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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지팡이를 신발장 안에 그대로 두셨다 엄마가 지팡이를 마련한 뒤에도 한동안 현관 신발장 안에 넣어 두고 있었다.병원에서 보행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준비했지만, 막상 집에 가져오고 보니 어디에 둘지가 먼저 문제가 됐다.엄마는 신발장 안쪽에 지팡이를 세워 두었다.“필요하면 꺼내 쓰지 뭐.”나는 그 말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 그때는 지팡이가 필요한 상황과 실제로 들고 외출하는 것이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신발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그렇게 지팡이는 현관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외출할 때마다 눈에 들어왔지만 엄마가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신발을 꺼내고 가방을 챙기는 동안에도 지팡이는 늘 같은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나도 지팡이를 현관 앞으로 옮겨놓지는 않았다.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판단할 수도 없었다.. 2026. 8. 10.
시장에 가기 전 엄마가 먼저 찾은 것은 화장실이었다 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대파도 사고 두부도 사고, 생선도 조금 살 생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한 번 떠올리고 바로 현관을 나섰을 텐데, 그날은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먼저 한마디를 하셨다.“시장 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갔다가 가자.”나는 잠깐 멈췄다.장을 보러 가는 날인데 화장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외출하기 전에 미리 다녀가자는 말이었다.그 말을 듣고 나니 그날 장보기에서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살 물건이 아니라 화장실이었다.화장실을 먼저 들렀다시장에 도착해서도 엄마는 물건부터 찾지 않으셨다.입구 쪽을 지나면서 화장실 표지를 먼저 확인했다.“화장실 저쪽에 있네.”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를 따라갔.. 2026. 8. 8.
진찰대 앞에서 먼저 멈춘 것은 발이었다 아버지와 정형외과에 갔던 날이었다.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의사는 아버지에게 몇 가지를 물은 뒤 진찰대 쪽을 가리켰다.“여기로 올라와 보세요.”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찰대 앞으로 갔다.그리고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가져왔다.진찰대 아래에는 낮은 발판이 놓여 있었다.아버지는 발판 쪽을 한번 바라봤다.잠시 뒤 다시 발을 내밀어 발판에 올렸다.한쪽 발을 올린 뒤 손으로 진찰대 가장자리를 짚었다.몸을 조금 들어 올려 자리에 앉았다.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진찰대 앞에서 잠깐 멈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멈춘 순간은 금방 지나갔다아버지가 진찰대에 앉자 의사는 곧바로 다음 동작을 말했다.“다리를 앞으로 한번 뻗어 보세요.”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앞.. 2026. 8. 7.
식사 중 기침이 나자 아버지가 먼저 꺼낸 말 저녁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오늘 밥 먹다가 기침이 좀 나더라.”나는 그릇을 들고 있다가 아버지를 바라봤다.“많이 나셨어요?”“몇 번 했어. 국 먹다가도 한 번 하고.”그날 식사 중에 기침이 몇 차례 있었던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식사를 멈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로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난 뒤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면서 조금 전의 일이 다시 식탁 위로 올라왔다.처음에는 짧은 한마디였다.“기침이 좀 나더라.”그 말을 시작으로 아버지는 식사 중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처음에는 그냥 잘못 넘어간 줄 알았는데 두 번 그러니까 나도 좀 신경 쓰이네.”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생각하셨다.“목에 뭐가 걸린.. 2026. 8. 6.
약봉지를 꺼내 놓고도 엄마는 바로 약을 먹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엄마가 식탁 위에 약봉지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물컵도 옆에 놓였다.평소라면 식사 후 먹는 약을 챙겨 드실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약봉지 옆에 예전에 받아 둔 약 하나가 함께 놓였다.엄마는 두 약봉지를 번갈아 바라봤다.그러다 작은 글씨가 적힌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이거 지금 먹는 거 맞나?”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엄마 쪽을 바라봤다.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어느 병원에서 어떤 약을 받아왔는지는 나도 대략 알고 있었다.그래서 약봉지를 보면 내가 아는 범위에서 바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막상 약봉지를 들여다보니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약봉지에는 복용 방법이 적혀 있었지만 집에 있는 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최근에 받은 약도 있었고, 전에 먹던 약도 남아 있었다.약봉지에 적힌 .. 2026. 8. 5.
엄마는 잠에서 깬 뒤 화장실에 간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아침, 엄마가 커피를 마시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지난번이랑은 다른 것 같아.”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 엄마를 바라봤다.엄마가 말했다.“이번에는 화장실 갔다 와서 바로 잤거든.”그 말을 듣고서야 며칠 전 아침에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그때 엄마는 밤중에 잠이 깬 뒤 한참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두 날 모두 밤에 화장실에 갔다는 점은 같았다.그런데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밤의 순서는 달랐다.다른 밤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엄마는 이번에는 잠이 깨자마자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눈 떠 보니까 화장실 가야겠더라.”“갔다 와서는 바로 잤어요?”“응. 금방 다시 잤어.”엄마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나는 며칠 전에는 이야기가 달랐다는 것을 떠올렸다.같이 살다 보니 엄..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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