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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체취를 바꾼 것은 향수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뒤에도 방 안에는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났고 새 옷으로도 갈아입으셨는데, 침실 문을 열자 눅눅한 냄새가 다시 느껴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목 뒤나 귀 뒤를 제대로 씻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베개를 손바닥으로 눌러 보니 커버가 축축했고, 침대 옆 의자에는 벗어 둔 테니스 셔츠가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사용한 수건도 세탁 바구니 안에서 다른 옷 아래에 깔려 있었다. 운동 뒤 젖은 셔츠가 냄새를 오래 남겼다아버지는 평소에도 땀이 많은 데다 한여름에도 테니스를 쉬지 않으신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셔츠의 등과 목둘레, 겨드랑이가 물에 적신 것처럼 축축했다. 테니스가 끝나도 바로 집으로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 2026. 7. 17.
운전면허 한 장이 집 안의 역할을 다시 나눴다 같은 날 아침, 엄마는 운동화를 신고 시장에 갈 준비를 했고 아버지는 현관 선반에서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드셨다. 엄마의 가방에는 버스카드와 신분증이 들어 있었고, 아버지의 손에는 테니스 가방과 차 열쇠가 들려 있었다. 두 분 모두 고령이었지만 집을 나서는 방식은 달랐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직접 운전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가까운 곳은 걸어가거나 가족과 함께 다녔다. 반면 아버지는 지금도 테니스 모임과 개인적인 약속에 갈 때 직접 운전하신다. 엄마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가족은 오래 의논하지 않았다. 지갑 속 면허증은 운전할 때보다 신분을 확인할 때 가끔 꺼내는 물건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면허증 한 장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여러 약속을 함께 생각해야 .. 2026. 7. 16.
엄마의 아침은 거실 10분에서 시작됐다 그날 아침에도 엄마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허리와 발이 불편한 날에는 밖에 나가는 일을 미루셨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언니가 리모컨을 보며 말했다. “유튜브 틀어 놓고 따라 하시면 되잖아.” 엄마는 헬스장 이야기를 할 때와 달리 “집에서 하는 거면 한번 해 볼까?” 하고 웃으셨다. 걷는 것과 다리에 힘을 기르는 일은 조금 달랐다엄마는 허리와 발이 불편해 바깥에 나가도 오래 걷지 못하신다. 멀리 산책하기 어려운 날에는 집 안에서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조금이라도 움직이시라고 말씀드렸다. 계속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 다리에 필요한 힘이 충분히 생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걷기는 .. 2026. 7. 15.
20년 넘게 디스크인 줄만 알고 살았다 엄마의 허리 통증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일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엄마는 방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워 계셨다. 의사가 꼼짝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린 나는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 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엄마가 들었던 병명은 허리 디스크였다. 당시에도 수술은 있었지만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며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지내셨다. 빨래를 오래 널거나 집안일을 많이 한 날이면 허리를 손으로 받치며 쉬셨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움직이셨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면 엄마도 가족도 자연스럽게 ‘디스크’라는 말을 꺼냈다. 오래 알고 지낸 병명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말처럼 사용했다.오래된 병명 때문에 놓.. 2026. 7. 15.
감기 뒤 기침이 길어질 때 우리 가족이 확인한 것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엄마의 기침이 시작됐다. 한두 번이면 멎을 줄 알았지만 엄마는 말을 멈추고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옆 테이블을 한 번 바라본 뒤 물을 천천히 마셨다. 감기는 이미 나았는데 사람들 앞에서는 아직 아픈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고 하셨다. 집에서는 기침이 나면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잠시 말을 멈출 수 있었지만 외출했을 때는 달랐다. 조용한 식당에서 기침 소리가 나면 엄마는 목의 불편함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셨다. 콧물과 목의 통증은 내과에서 받은 약을 드신 뒤 차츰 가라앉았고 열도 없었다. 그런데 기침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손수건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씀하셨다. “말을 오래 하면 더 나오는 것 같아.” 식당에서는 기침보다 엄마.. 2026. 7. 15.
치과를 나오자 엄마는 틀니로 하겠다고 말했다 치과 상담을 마치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던 중 엄마가 먼저 말씀하셨다. “나는 임플란트 말고 틀니로 할래.” 나는 신호를 기다리며 엄마 쪽을 잠시 바라봤다. 치과에서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운 어금니를 발치한 뒤 임플란트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 참이었다. 시술 전 검사를 통해 잇몸뼈와 신경 위치를 확인하고, 현재 건강 상태에 맞춰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설명을 충분히 들었으니 엄마도 임플란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기억한 것은 검사 방법보다 아버지가 임플란트를 받은 뒤 얼굴이 붓고 멍이 들었던 모습이었다. 치료가 끝난 뒤 얼마나 잘 씹을 수 있는지보다 수술 의자에 누워 있는 시간과 회복하는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먼저 걱정하셨다. 같은 설.. 202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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