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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가는 날은 맞는데 지금 갈 시간은 아니었다 식탁 옆 벽에 걸린 달력의 수요일 칸에는 ‘정형외과’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옆의 ‘오전’에는 두 줄이 그어져 있었고, 바로 아래에는 ‘오후 2시’가 더 큰 숫자로 쓰여 있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는 표시로 작은 동그라미도 하나 남아 있었다. 엄마는 식사를 준비하다가도 달력 앞에 서서 그 숫자를 다시 읽으셨다. “수요일 오후 두 시. 오전에는 선생님이 수술하신대.” 엄마가 다니는 정형외과의 담당 의사는 외래 진료와 수술을 함께 맡고 있었다. 오전에 수술이 잡히면 진료는 오후에 시작됐고, 오후 수술이 있는 날에는 오전에 환자를 보는 경우가 있었다. 같은 요일에 예약하더라도 병원에 가야 하는 시간은 매번 같지 않았다. 같은 요일에도 진료 시간은 달라질 수 있었다엄마는 병원에 다녀온 날 다음 예약 날짜.. 2026. 8. 9.
시장에 가기 전 엄마는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하셨다 엄마는 현관 의자에 앉아 운동화 끈을 묶다가 휴대전화를 내 쪽으로 내미셨다. “시장 화장실이 어디쯤 있었지?” 장을 보러 나갈 때 엄마가 먼저 확인하던 것은 버스가 언제 오는지와 어떤 반찬을 살지였다. 재래시장 입구에서 두부를 사고, 안쪽 생선가게까지 걸어간 뒤 돌아오는 길에 채소를 고르는 순서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장바구니를 들기 전에 화장실 위치부터 물으셨다. 밤에 화장실을 여러 번 다녀온 뒤부터 낮 외출에서도 소변이 급해질까 걱정되는 날이 생겼다. 집에서는 바로 화장실에 갈 수 있었지만 시장 안쪽까지 들어간 뒤 갑자기 급해지면 어디로 가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셨다. “입구 쪽 건물 안에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휴대전화 지도를 확대하자 엄마는 화면보다 자신의 기억을 먼저.. 2026. 8. 8.
의사가 한 질문에 답은 두 가지였다 정형외과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 띄운 엑스레이를 살펴보다가 의자를 아버지 쪽으로 돌렸다. “요즘 무릎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아픈 데 없어요.”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하셨다.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뒤 해마다 한 번씩 듣는 질문이었고, 이번에도 답은 짧았다. 촬영한 엑스레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말을 이미 들어서인지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나는 옆에서 최근에 본 모습을 덧붙였다. “계단을 오를 때는 손잡이를 오래 잡으세요. 차에서 내린 뒤에도 바로 걷지 않고 잠깐 서 계실 때가 있고요.”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언제 계단을 못 올라갔어? 다 올라가지.” “못 올라가신다는 말은 아니에요. 전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신다는 뜻이에요.” 의사는 우리 두 사람.. 2026. 8. 7.
식사 중 기침이 나자 숟가락이 자주 멈췄다. “제발 삼키고 말씀하세요.” 내 목소리가 식탁 위에서 먼저 높아졌다. 아버지는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드신 뒤 기침하면서도 하던 이야기를 끝내려 하고 있었다. 눈가가 붉어질 만큼 몇 차례 기침했는데도 손으로 괜찮다는 표시를 하며 다시 입을 여셨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말이야.” 나는 아버지 앞으로 물컵을 밀었다. 아버지는 한 모금을 마시려다가 다시 기침했고, 손에 든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엄마는 천천히 드시라고 말씀하시더니 조금 뒤 반찬 이야기를 꺼내다가 직접 사레가 들리셨다. 한 끼 식사에서 두 분의 숟가락이 여러 번 멈췄다. 기침이 잠잠해지면 다시 밥을 드셨고, 몇 숟가락 지나지 않아 목을 가다듬었다. 식탁 위의 대화는 이어졌지만 밥과 반찬은 평소보다 오래 남아 있었다. 그날은 기침.. 2026. 8. 6.
서랍 속 약봉지를 식탁에 펼쳐본 날 엄마는 서랍 안에 들어 있던 약봉지를 하나씩 꺼내 식탁 위에 늘어놓으셨다. 흰 봉지와 노란 봉지가 겹쳐졌고, 오래전에 받아 둔 안약과 감기약도 차례로 나왔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엄마는 봉지 안에 든 알약을 눈앞에 가까이 가져가셨다.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며 약 이름 대신 색과 모양을 살피셨다. 둥근 흰색 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조금 더 작은 약을 다시 집어 드셨다. 정형외과에서는 통증이 있을 때 드시는 약이 집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전 진료에서 필요할 때 복용하도록 처방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새 약을 내지 않겠다는 설명이었다. 엄마는 그런 약을 받은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버린 적은 없으니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참 동안 서랍을 뒤진 끝에 안쪽에서 작은 약봉지.. 2026. 8. 5.
밤중 화장실 뒤에 남은 시간을 살펴봤다 엄마가 밤에 화장실을 몇 번 다녀오셨는지는 아침 식탁에서 드러났다. 밥을 다 드시기도 전에 하품을 하셨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뒤에는 잠시 눈을 감고 계셨다. 커피를 끊은 뒤에도 아침 졸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화장실을 얼마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몰라. 아랫집에 미안할 정도였어.” 엄마는 밤새 복도를 걸어 다닌 발소리가 아래층에 들렸을까 걱정하셨다. 매일 반복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주무셨지만, 화장실을 두세 번 다녀온 다음 날이면 오전 내내 피곤해하셨다. 나는 전날 저녁 식탁에 놓였던 물컵을 떠올렸다. 싱크대 옆에 있던 컵을 들어 보자 엄마는 손가락으로 컵의 중간쯤을 가리키셨다. “어제는 이것밖에 안 마셨어.” 잠들기 직전에 물을 많이 드신 것도 아니었고 국물이 ..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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