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6 인공관절 수술 뒤 첫걸음은 보행기와 함께였다 재활실 문이 열릴 때마다 안에서 들리던 구령이 복도까지 퍼졌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 쪽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기구가 움직이는 소리와 바닥에 발을 딛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번갈아 들렸다. 한 번은 열린 문 사이로 아버지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는 재활치료가 어땠느냐고 물어도 “좀 아프더라”라고만 답하셨지만, 그날 문틈으로 본 표정은 그 짧은 말과 달랐다. 수술 뒤 아버지의 하루에는 전에는 없던 동작이 하나씩 들어왔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는 일부터 보행기를 잡고 옮기는 일까지, 그날그날 해야 할 움직임이 달라졌다. 처음 보행기를 잡았을 때 한 걸음 뒤에 오래 멈추셨다수술을 마치면 한동안 침대에서 쉬는 시간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의료진은 .. 2026. 7. 11. 백내장 수술 시기를 결정하는 신호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엄마는 계란 한 판 앞에 한참 서 계셨다. 진열대 아래에 붙은 가격표를 보려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몸을 가까이 가져가셨지만 숫자는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거 얼마예요?” 엄마가 지나가던 직원에게 묻기 전에 내가 옆에서 가격을 읽어 드렸다. 약봉투나 메뉴판의 작은 글씨도 자주 대신 읽어 드렸기 때문에 가격표를 읽어 드리는 일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며칠 뒤 식당에서 계란말이가 나오자 엄마는 접시를 얼굴 가까이 끌어당기셨다. 한참 바라본 뒤 내게 물으셨다. “이게 뭐야?” 글씨가 아니라 색과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나는 걱정보다 답답함을 먼저 드러냈다. 안과에 가서 검사도 받고 안경도 맞추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격표를 읽어 드릴 때와 달리, 눈앞의 음식까지 가까.. 2026. 7. 11. 약을 다 먹은 날 옆에 검사 날짜를 적었다 냉장고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엄마가 헬리코박터균 약을 마지막으로 드신 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몇 주 뒤에 표시한 검사 예정일이었다. 마지막 복용일 아침에는 식탁 한쪽을 차지하던 약봉투가 한 장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아침 약을 드신 뒤 빈 봉투를 다른 것들과 한데 모으셨다. 입안에 쓴맛이 오래 남고 속이 불편한 날도 있었던 만큼 마지막 봉투가 비는 순간에는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제 약은 더 없는 거지?” 나는 복약 안내문을 다시 펼쳐 마지막 복용일을 확인했다. 안내문 아래쪽에는 치료가 끝난 뒤 헬리코박터균이 없어졌는지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엄마는 빈 약봉투를 버리려다가 잠시 손을 멈추셨다. 검사할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으셨다. 복용.. 2026. 7. 11. 두세 시간마다 깨는 밤, 시계부터 치웠다 엄마 방의 탁상시계는 원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밤중에 화장실에 가거나 아침 시간을 확인하기에는 그 자리가 가장 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계는 시간을 알려 주는 물건보다 엄마가 밤새 얼마나 잤는지를 계산하는 도구에 가까워졌다. “실컷 잔 줄 알았는데 두 시간밖에 안 지났네.” 엄마는 시계를 본 뒤 잠든 시간과 깨어난 시간을 손가락으로 계산하셨다. 아침까지 세 시간이 남았는지 네 시간이 남았는지도 다시 세어 보셨다. 잠에서 깬 일보다 숫자를 확인한 뒤 더 오래 뒤척이는 날이 많았다. 시계를 완전히 치우지는 않았다. 몇 시인지 모르는 채 누워 있는 것이 더 답답하다는 엄마의 말도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대신 누운 자리에서는 숫자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시계의 방향을 돌려놓았다.새벽의 시계는 남은 .. 2026. 7. 10. 점심 접시에 빠져 있던 반찬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때 엄마가 부엌으로 나오셨다. 한 손으로 문틀을 잡고 다른 손을 가볍게 펴 보시더니 손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배도 고프고 몸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아.” 아침부터 계속 기운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점심을 드시고 몇 시간이 지난 뒤 갑자기 허기가 생기고 손끝이 떨리는 듯했다고 했다. 무엇을 드셨는지 묻자 찐 감자 두 개가 전부였다. 감자를 드실 때는 배가 불러 다른 반찬까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접시에는 감자가 넉넉히 놓여 있었지만 달걀이나 두부, 채소 반찬은 없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물을 천천히 마셨다. 나는 감자를 치우거나 급하게 다른 음식을 권하지 않고, 그날 점심 접시에 무엇이 빠져 있었는지를 먼저 떠올렸다.손이 떨린 뒤 그날 점심부터 다시 떠올렸.. 2026. 7. 10. 전신마취를 앞두고 가장 오래 확인했던 것 지금도 부모님이 수술이나 검사를 앞두면 아버지는 수술 방법보다 마취 이야기를 먼저 물으신다. “이번에도 완전히 재우는 건가?” 무릎 수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가족의 관심은 병원 선택보다 전신마취로 옮겨갔다. 당시 일흔일곱이었던 아버지가 마취에서 무사히 회복하실 수 있을지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수술실 문이 닫힌 뒤 나는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가방 속 물건을 정리하고 휴대전화 화면도 여러 번 켰지만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금방 끝난다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느냐며 웃으셨다. 그래도 수술이 끝났다는 말만으로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아버지가 우리를 알아보고 평소처럼 말씀하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 2026. 7. 10. 이전 1 ···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