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엄마가 헬리코박터균 약을 마지막으로 드신 날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몇 주 뒤에 표시한 검사 예정일이었다. 마지막 복용일 아침에는 식탁 한쪽을 차지하던 약봉투가 한 장만 남아 있었다. 엄마는 아침 약을 드신 뒤 빈 봉투를 다른 것들과 한데 모으셨다. 입안에 쓴맛이 오래 남고 속이 불편한 날도 있었던 만큼 마지막 봉투가 비는 순간에는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제 약은 더 없는 거지?” 나는 복약 안내문을 다시 펼쳐 마지막 복용일을 확인했다. 안내문 아래쪽에는 치료가 끝난 뒤 헬리코박터균이 없어졌는지 검사로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엄마는 빈 약봉투를 버리려다가 잠시 손을 멈추셨다. 검사할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느냐고 물으셨다. 복용이 끝난 약봉투는 치워도 됐지만 약 이름과 복용 기간은 남겨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마지막 봉투 한 장과 안내문만 작은 파일에 넣었다.
마지막 약봉투에는 복용 기간이 남아 있었다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에는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과 항생제 등 여러 약이 함께 사용될 수 있다. 엄마도 평소 드시던 약에 아침과 저녁 약이 추가되면서 식사 시간과 복용 순서를 다시 맞춰야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약봉투를 식탁 위에 나란히 놓고 평소 약과 제균 치료약을 구분했다. 입안에 쓴맛이 남거나 메스꺼운 날에는 다음 약을 또 먹어야 한다는 사실부터 부담스러워하셨다. 그래도 처방받은 기간을 빠뜨리지 않으려고 빈 봉투를 하루씩 모아 두셨다. 마지막 봉투에는 약 이름과 아침·저녁 복용 표시가 남아 있었다.

요소호기검사는 치료 결과를 확인하는 검사였다
약을 모두 드신 뒤 엄마는 속 쓰림이 전보다 줄었다고 하셨다. 식사를 마친 뒤 답답하다고 말하는 날도 드물어졌다. "이 정도면 약이 잘 들은 거 아니야?" 그래도 치료가 끝난 뒤에는 제균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남아 있었다. 엄마는 검사라는 말을 듣자 다시 수면내시경을 해야 하는지부터 걱정하셨다. "또 그 약 먹고 자야 하는 거니?" 요소호기검사처럼 숨을 이용해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번에는 검사실에서 숨을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를 물으셨다.
검사 날짜를 잡기 전 현재 약부터 펼쳐 놓았다
확인검사 날짜는 약을 다 먹은 바로 다음 날로 잡지 않았다. 병원에서 안내받은 시기를 확인한 뒤 냉장고 달력에 검사 예정일을 표시했다. 엄마는 현재 먹는 약을 이름보다 '위장약', '아침약'처럼 기억하고 있어 처방전과 약봉투를 식탁에 그대로 펼쳤다. 어떤 약이 검사에 영향을 주는지는 가족이 판단하기 어려웠다. 복용 중인 약은 골라내지 않고 봉투째 챙겼다. 검사 안내문은 약봉투 옆에 놓았다. 엄마가 가장 궁금해한 것은 지금 먹고 있는 위장약을 그대로 먹어도 되는지였다. 그 질문을 안내문 여백에 적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