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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면허를 반납했고 아버지는 운전을 계속했다

by 브라보인생 2026. 7. 16.

아버지가 혼자 고속도로를 타고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시는 날이면 우리 가족은 출발 시간부터 기억해 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목적지에 도착할지 짐작해 보고, 평소보다 연락이 늦으면 휴대전화를 자꾸 확인하게 된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갈 때는 내가 운전하지만, 아버지 개인적인 볼일이 있을 때까지 매번 따라나설 수는 없다. 80세가 넘은 지금도 아버지는 시내 도로뿐 아니라 고속도로까지 직접 운전하신다. “천천히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차 열쇠를 챙기시는 아버지가 늘 하는 말씀이다. 운전에 익숙한 아버지에게 연세만을 이유로 당장 운전대를 놓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교육을 받았고 면허가 유지됐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걱정 없이 보내드릴 수도 없다. 운전은 아버지에게 이동 수단이면서 혼자 생활을 이어 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고속도로를 타는 날이면 연락 시간을 계산한다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운전을 오래 하셨고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다니셨다. 본인은 아직 표지판도 잘 보이고 브레이크를 밟는 데도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옆자리에 타 보면 급하게 차선을 바꾸거나 속도를 지나치게 높이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예전보다 천천히 운전하려고 하신다. 하지만 천천히 달리는 것만으로 모든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신호나 표지판을 제때 알아보는지,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 주변 차량의 속도를 살피는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바로 밟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뉴스에서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사고를 접할 때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발 움직임을 떠올린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버지 차에 함께 탈 때면 일부러 시험하듯 묻지는 않는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주변을 충분히 살피는지, 발을 옮길 때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주저하지 않는지, 어두운 길에서도 차선을 잘 보는지를 평소 모습 속에서 확인한다.

 

현관에서 자동차 키를 가지고 외출하려는 고령의 아버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웅하는 중년의 딸

오키나와 렌터카 뒤에 붙어 있던 같은 모양의 표지

몇 년 전 오키나와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렌터카를 이용한 적이 있다. 차를 인수하며 보니 차량 뒤쪽에 해외에서 온 운전자가 사용한다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낯선 도로와 반대 방향의 운전석에 적응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주변 차량이 상황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도로에 나가보니, 차량들에 부착되어 있는 색과 모양이 통일된 다른 표시들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초보운전자 스티커는 ‘초보운전’, ‘아기가 타고 있어요’처럼 문구와 디자인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일본의 표지는 멀리서 봐도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일정한 모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행을 마친 뒤 알아보니 초록색과 노란색이 섞인 잎 모양은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운전자가 붙이는 초보운전자 표시였다. 흔히 와카바 마크라고 불렸다. 고령운전자를 나타내는 표지는 주황색과 노란색, 초록색과 연두색이 들어간 네잎클로버 모양으로 따로 마련돼 있었다. 표지를 부착한 차량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지 않도록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운전 상태를 숨겨야 할 약점으로 보기보다,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고 조심할 수 있게 만든 방식처럼 보였다. 그때는 여행지에서 본 좋은 제도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연세가 많아질수록 그 표지가 자주 떠올랐다. 우리나라에도 고령 운전자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통일된 표시가 널리 알려진다면 가족들의 마음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엄마는 면허를 반납했고 아버지는 교육을 선택했다

같은 집에서 지내는 부모님이지만 운전면허를 두고 내린 결정은 달랐다. 엄마는 더 이상 운전할 일이 많지 않았고, 직접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 면허를 반납하셨다. 반납 절차를 마친 뒤 10만 원 상당의 지역화폐도 받으셨다. 엄마는 운전을 그만둔다는 사실을 크게 아쉬워하지 않으셨다. 필요할 때는 가족에게 부탁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셨다. 반면 아버지는 개인적인 약속과 운동 모임이 있어 차가 없으면 생활 반경이 크게 줄어든다. 몇 년 전에는 75세 이상 운전면허 갱신 대상자에게 필요한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과 관련 검사를 받으셨다. 예약한 날짜에 맞춰 다녀오신 뒤에는 인지능력과 안전운전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적성검사 절차도 통과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셔서 “검사도 통과했고 교육도 다 받았다”며 우리를 안심시키셨다. 그 말을 듣고 가족들도 잠시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교육 과정에서 한 번 확인을 받았다고 해서 앞으로의 안전 운전까지 계속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도 들으셨다고 했다. 시력이나 반응 속도, 판단력이 전과 달라졌다고 느껴질 때는 다음 갱신 시기만 기다리지 말고 다시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검사를 통과했다는 결과보다 이후의 변화를 살피는 일이 더 걱정되었다. 엄마에게는 면허 반납이 생활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운전을 멈추는 일이 사람을 만나고 혼자 움직이는 범위까지 줄이는 결정이었다. 두 분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식탁에 앉아 운전면허 관련 안내문을 함께 살펴보는 고령의 아버지와 중년 딸

운전대를 놓으라는 말 대신 실제 운전을 보기로 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무조건 운전을 그만두시라고 반복해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함께 차를 탈 기회가 있을 때 실제 운전 모습을 살피고, 전과 다른 점이 보이면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다. 야간 운전에서 표지판을 놓치지는 않는지, 주차할 때 거리 판단이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발바닥 감각이나 다리 힘에 불편함은 없는지도 묻는다. 아버지께는 속력을 내지 말라는 말도 자주 드린다. 다만 고속도로에서는 지나치게 느린 속도 역시 주변 차량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니, 무조건 천천히 가기보다 충분한 차간 거리를 두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린다. 몸이 피곤하거나 눈이 침침한 날에는 가까운 거리라도 운전하지 말고 가족에게 연락해 달라는 부탁도 한다. 얼마 전 아버지는 다른 지역에 볼일이 있다며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나가셨다. 출발하기 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전화를 하겠다고 하셨다. 예상한 시간이 지나자 식탁 위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뒤집어 보았다. 조금 뒤 화면에 아버지 이름이 떴다. “도착했다. 차도 별로 안 막히더라.” 목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곧 가봐야 한다며 먼저 전화를 끊으셨다. 통화는 채 1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날 아침 내내 기다렸던 소식은 그 짧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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