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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기 전 엄마가 먼저 찾은 것은 화장실이었다 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대파도 사고 두부도 사고, 생선도 조금 살 생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한 번 떠올리고 바로 현관을 나섰을 텐데, 그날은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먼저 한마디를 하셨다.“시장 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갔다가 가자.”나는 잠깐 멈췄다.장을 보러 가는 날인데 화장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외출하기 전에 미리 다녀가자는 말이었다.그 말을 듣고 나니 그날 장보기에서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살 물건이 아니라 화장실이었다.화장실을 먼저 들렀다시장에 도착해서도 엄마는 물건부터 찾지 않으셨다.입구 쪽을 지나면서 화장실 표지를 먼저 확인했다.“화장실 저쪽에 있네.”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를 따라갔.. 2026. 8. 8.
진찰대 앞에서 먼저 멈춘 것은 발이었다 아버지와 정형외과에 갔던 날이었다.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의사는 아버지에게 몇 가지를 물은 뒤 진찰대 쪽을 가리켰다.“여기로 올라와 보세요.”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찰대 앞으로 갔다.그리고 바로 올라가지 않았다.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가져왔다.진찰대 아래에는 낮은 발판이 놓여 있었다.아버지는 발판 쪽을 한번 바라봤다.잠시 뒤 다시 발을 내밀어 발판에 올렸다.한쪽 발을 올린 뒤 손으로 진찰대 가장자리를 짚었다.몸을 조금 들어 올려 자리에 앉았다.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진찰대 앞에서 잠깐 멈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멈춘 순간은 금방 지나갔다아버지가 진찰대에 앉자 의사는 곧바로 다음 동작을 말했다.“다리를 앞으로 한번 뻗어 보세요.”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앞.. 2026. 8. 7.
식사 중 기침이 나자 아버지가 먼저 꺼낸 말 저녁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오늘 밥 먹다가 기침이 좀 나더라.”나는 그릇을 들고 있다가 아버지를 바라봤다.“많이 나셨어요?”“몇 번 했어. 국 먹다가도 한 번 하고.”그날 식사 중에 기침이 몇 차례 있었던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식사를 멈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로 묻지 않았다.식사가 끝난 뒤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면서 조금 전의 일이 다시 식탁 위로 올라왔다.처음에는 짧은 한마디였다.“기침이 좀 나더라.”그 말을 시작으로 아버지는 식사 중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했다.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처음에는 그냥 잘못 넘어간 줄 알았는데 두 번 그러니까 나도 좀 신경 쓰이네.”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잠시 생각하셨다.“목에 뭐가 걸린.. 2026. 8. 6.
약봉지를 꺼내 놓고도 엄마는 바로 약을 먹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엄마가 식탁 위에 약봉지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물컵도 옆에 놓였다.평소라면 식사 후 먹는 약을 챙겨 드실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약봉지 옆에 예전에 받아 둔 약 하나가 함께 놓였다.엄마는 두 약봉지를 번갈아 바라봤다.그러다 작은 글씨가 적힌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봤다.“이거 지금 먹는 거 맞나?”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엄마 쪽을 바라봤다.부모님과 함께 살다 보니 어느 병원에서 어떤 약을 받아왔는지는 나도 대략 알고 있었다.그래서 약봉지를 보면 내가 아는 범위에서 바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막상 약봉지를 들여다보니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약봉지에는 복용 방법이 적혀 있었지만 집에 있는 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최근에 받은 약도 있었고, 전에 먹던 약도 남아 있었다.약봉지에 적힌 .. 2026. 8. 5.
엄마는 잠에서 깬 뒤 화장실에 간 순서를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뒤 아침, 엄마가 커피를 마시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지난번이랑은 다른 것 같아.”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 엄마를 바라봤다.엄마가 말했다.“이번에는 화장실 갔다 와서 바로 잤거든.”그 말을 듣고서야 며칠 전 아침에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났다.그때 엄마는 밤중에 잠이 깬 뒤 한참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두 날 모두 밤에 화장실에 갔다는 점은 같았다.그런데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밤의 순서는 달랐다.다른 밤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엄마는 이번에는 잠이 깨자마자 화장실에 갔다고 했다.“눈 떠 보니까 화장실 가야겠더라.”“갔다 와서는 바로 잤어요?”“응. 금방 다시 잤어.”엄마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나는 며칠 전에는 이야기가 달랐다는 것을 떠올렸다.같이 살다 보니 엄.. 2026. 8. 4.
엄마가 기억한 날짜보다 방송이 먼저 알려준 것이 있었다 아침에 TV를 켜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뉴스가 끝나고 지역 소식이 잠깐 나왔다.이번 주에 예정되어 있던 동네 행사가 하루 미뤄진다는 내용이었다.엄마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TV 쪽을 바라봤다.“그거 이번 주 토요일 아니었어?”나는 대답하려다가 잠시 TV 화면을 다시 봤다.방송에서는 변경된 날짜를 알려주고 있었다.예전 같았으면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을 먼저 꺼냈을 것이다.그런데 그날은 엄마와 함께 방송을 들었다.행사 날짜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화면에서 이미 확인되고 있었다.방송이 먼저 알려준 날짜가 있었다방송에서는 행사 장소와 변경된 날짜를 한 번 더 알려줬다. 엄마는 잠시 TV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날짜가 바뀌었나 보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에는 엄마가 원래 토요일로 알고 있었던 이유보다 지금 방송에.. 2026.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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