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6 같은 텔레비전을 보는데 대화가 자꾸 끊겼다 “방금 뭐라고 했어?” 그 말이 그날 저녁에만 세 번째였다. 저녁 뉴스를 보는 동안 엄마와 아버지는 리모컨을 두 번이나 주고받으셨다. 엄마는 진행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며 소리를 두 칸 올렸고, 아버지는 너무 크다며 다시 한 칸 낮추셨다. 결국 텔레비전 소리는 엄마가 편한 정도에 맞춰 두었다. 뉴스 화면은 그대로였지만 대화는 자꾸 끊겼다. 내가 옆에서 한 말을 엄마가 놓치면 같은 문장을 다시 들려드렸고, 아버지가 뉴스 내용에 관해 물으면 엄마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얼굴부터 바라보셨다. 방송 소리와 사람의 말이 겹치면 어느 쪽도 제대로 듣기 어려워하셨다. TV 볼륨이 조금 커진 것만으로 난청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방송마다 음량이 다를 수도 있었고, 진행자의 말이 빨라 놓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2026. 7. 14. 대장내시경 준비표가 냉장고를 차지한 며칠 냉장고 문 한쪽에는 대장내시경 식사표가 자석으로 붙어 있었다. 문을 열 때마다 김치와 잡곡밥을 피하는 날, 흰죽을 먹는 날, 평소 복용하던 약을 마지막으로 먹는 날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검사 날짜 하나만 적혀 있을 줄 알았던 준비표에는 해야 할 일이 여러 줄로 나뉘어 있었다. 반찬통을 꺼내려던 엄마의 손이 식사표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럼 오늘부터 뭘 먹으면 되는 거니?” 검사 당일 아침만 굶으면 되는 줄 알았던 엄마에게 대장내시경은 예상보다 일찍 시작되는 검사였다. 음식과 복용약을 미리 조절해야 했고, 몸 상태가 달라지면 이미 정해 둔 일정도 다시 맞춰야 했다. 검사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하루였지만 우리 집 냉장고와 식탁은 그보다 며칠 먼저 바뀌기 시작했다.검사 날짜를 잡기 전에 진료부터 받았다 검사.. 2026. 7. 13. CT를 찍은 날 차 문 앞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뇌 CT를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머릿속에 피가 고여 있어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집에 계셨던 아버지가 몇 시간 뒤에는 머리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긴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의자 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나는 접수창구와 검사실 문을 번갈아 바라봤다. 의료진이 CT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동안에는 차에 오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십여 년 전쯤 아버지는 차에 타실 때마다 한쪽 다리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셨다. 차 문을 열어 놓고 한참 서 계시다가 문틀에 손을 짚은 뒤에야 겨우 다리를 안으로 옮기셨다. 평소 테니스와 등산을 즐기던 분이라 무릎이나 허리가 불편한 줄 .. 2026. 7. 13. 콜레스테롤 검사표에는 서로 다른 네 가지 숫자가 있었다 엄마는 새로 받아 온 약봉투를 식탁 위에 놓은 뒤 접혀 있던 혈액검사 결과지를 다시 펼치셨다. 맨 위에 적힌 총콜레스테롤부터 내려다보다가 LDL과 HDL, 중성지방 칸에서 손가락을 멈추셨다. “기름진 것도 별로 안 먹는데 왜 높게 나온 걸까?” 콜레스테롤 약을 받았지만 엄마가 가장 궁금해한 것은 약 이름보다 검사 결과가 높게 나온 이유였다. 튀김이나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간식도 자주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눈에 보이는 기름을 많이 먹지 않으면 콜레스테롤 수치 역시 높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표에는 총콜레스테롤과 LDL 콜레스테롤, H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이 서로 다른 줄에 적혀 있었다. 그동안 한 단어로 묶어 부르던 콜레스테롤은 검사표 안에서 네 가지 숫자로 나뉘어 있었다.. 2026. 7. 12. 발바닥이 둔해졌는데 혈당은 예상보다 낮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현관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다가 양말 신은 발을 바닥에 몇 번 눌러보셨다.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리고 발가락에도 천천히 힘을 주셨다. 깔창이 접혔나 싶어 신발 안쪽까지 손으로 훑었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다. “단단한 바닥인데도 발밑에 얇은 스펀지가 깔린 것 같아.” 통증이 심하거나 발이 부은 것은 아니었다. 피부색도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맨발로 마루를 밟거나 신발을 신고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느낌이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는 겨울 내내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다닌 탓이라고 여겼다. 나는 혈당을 낮추는 약을 드시고 있다는 사실부터 떠올렸다. 검사 결과도 나오기 전에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날 아버지는 발을 한 번 더 바닥에 눌러본 뒤 .. 2026. 7. 12. 주사를 쉬어도 관리까지 쉬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골다공증 주사를 맞던 달에는 병원에서 오는 문자가 일정표 역할을 했다. 석 달에 한 번 문자가 오면 날짜를 확인하고, 그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으셨다. 몇 년 동안 이어진 일정이라 엄마도 나도 다음 주사를 언제 맞는지 확인하는 일을 치료의 중심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진료에서는 다음 주사 날짜를 잡지 않았다. 의사는 당분간 주사를 쉬면서 상태를 살펴보자고 했다. "오래 맞았으니 이제 뼈가 좋아진 것 아니니?" 엄마에게 주사를 쉰다는 말은 치료해야 할 일이 하나 줄었다는 뜻에 가까웠다. 다음 주사 날짜가 달력에서 사라진 뒤에는 약 이름과 마지막 투여일, 집 안에서 넘어질 만한 곳을 따로 확인하기 시작했다.달력에는 주사 이름과 마지막 투여일을 함께 적었다 엄마는 자신이 맞아 온 약을 정.. 2026. 7. 12. 이전 1 ···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