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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를 찍은 날 차 문 앞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by 브라보인생 2026. 7. 13.

뇌 CT를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머릿속에 피가 고여 있어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만 해도 집에 계셨던 아버지가 몇 시간 뒤에는 머리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실 앞에서는 누구도 긴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의자 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나는 접수창구와 검사실 문을 번갈아 바라봤다. 의료진이 CT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동안에는 차에 오르지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십여 년 전쯤 아버지는 차에 타실 때마다 한쪽 다리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셨다. 차 문을 열어 놓고 한참 서 계시다가 문틀에 손을 짚은 뒤에야 겨우 다리를 안으로 옮기셨다. 평소 테니스와 등산을 즐기던 분이라 무릎이나 허리가 불편한 줄 알았다. 그날 CT 화면을 보고서야 차 문 앞에서 멈춰 서 있던 모습과 느려진 걸음이 다시 떠올랐다.

차 문 앞에서 아버지의 움직임이 자꾸 멈췄다

차에 탈 때마다 아버지는 문틀을 짚고 한쪽 다리를 안으로 옮겼다. 며칠 뒤에는 차를 타지 않을 때도 변화가 보였다. 거실을 가로질러 걷는 속도가 전보다 느려졌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는 주변을 손으로 짚은 뒤 한참 힘을 주어야 몸을 세울 수 있었다. 당시에는 오랫동안 운동해 온 무릎이나 허리에 무리가 간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도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때마다 “괜찮다”고만 하셨다. 통증이 심하지 않다는 말에 안도했고, 다리를 주무르거나 조금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에 다리를 옮기지 못했고, 걷다가 발을 내딛는 동작도 전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때는 이런 움직임의 변화를 머리 문제와 연결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머리를 다쳤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차에 오르기 위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 고령의 아버지와 곁에서 살피는 가족

넘어진 이야기는 수술이 끝난 뒤에야 들었다

아버지가 테니스를 치다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들은 것은 수술이 끝난 뒤였다. 운동 중 발을 헛디뎌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지만 바로 일어날 수 있었고, 당시에는 통증도 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병원에 갈 일은 아닌 줄 알았지.” 아버지는 앉았다가 일어날 때 머리 안에서 무언가 출렁이는 듯한 느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가족에게 알리면 곧바로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 혼자 참고 계셨다. 엄마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며 속상해하셨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대답 없이 침대 위 이불만 바라보셨다. 병원에 가기 싫어 고집을 부린다고만 생각했지만, 그날은 좋지 않은 결과를 확인하게 될까 봐 말을 미루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부딪친 직후 멀쩡해 보여도 두개골 안쪽에 피가 천천히 고이면 며칠이나 수주 뒤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고령자는 비교적 가벼운 충격 뒤에도 걸음이나 팔다리 움직임, 기억과 반응, 졸림 같은 변화가 서서히 나타날 수 있어 최근의 낙상과 연결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머리 사진만 찍어 보자는 말에는 아버지도 동의하셨다   

처음에는 곧바로 대학병원에 가자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입원이나 수술로 이어질까 봐 부담스러워했고, 지인이 근무하는 영상의학과에서 머리 사진만 찍어 보기로 했다. CT 한 번 정도라면 받아 보겠다고 하셨을 때 마음이 바뀌기 전에 약속한 날 바로 병원으로 모셨다. 검사가 끝난 뒤에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CT에서 머릿속에 피가 고인 모습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머리를 다쳤다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검사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CT가 필요한지는 충격의 정도와 나이, 다친 뒤 나타난 증상, 의식을 잃었는지, 복용 중인 약이 있는지 등을 의료진이 함께 살펴 결정한다고 했다. 증상이 뒤늦게 나타났더라도 최근 낙상이나 운동 중 사고가 있었다면 진료할 때 함께 알려야 했다. 

 

개인용품을 급히 넣은 가방을 들고 대학병원 복도를 걷는 보호자 딸

아버지는 그때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다  

상태가 안정된 뒤 아버지는 넘어질 당시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담당 의료진은 아스피린처럼 혈소판 작용에 영향을 주는 약이나 혈액이 굳는 과정을 억제하는 약을 먹고 있다면 머리를 다친 뒤 진료받을 때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출혈의 원인을 아스피린 하나로 정할 수는 없었지만, 복용 중인 약 이름과 마지막 복용 시점은 당시 상태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였다. 출혈이 걱정된다고 집에서 아스피린이나 항응고제 복용을 멈출 수는 없었다. 심장이나 뇌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처방된 약일 수 있어 중단 자체가 다른 위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를 다쳤다면 진료 병원이나 약을 처방한 의료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약을 계속 복용해도 되는지 확인하는 편이 나았다. 

 

세면도구를 챙기던 몇 시간 동안 수술이 결정됐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은 날, 나는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어 서랍과 욕실을 여러 번 오갔다. 아침에는 집에 있던 사람이 저녁에는 머리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의료진은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낸 뒤 머릿속에 고여 있는 피를 밖으로 빼내는 수술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다리 움직임이 달라질 만큼 증상이 나타나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엄마는 수술실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오래 앉아 계셨다. 의료진이 자주 시행하는 수술이라고 설명했지만 가족에게는 아버지가 처음 받는 머리 수술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과정이라는 말도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을 듣기 전까지는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병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전날과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차에 오를 때 들기 어려워했던 다리를 스스로 움직였고, 침대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는 동작도 자연스러워졌다. 얼굴빛과 말투도 조금씩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쪽 다리를 천천히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더니 "이제는 올라가네"라고 짧게 말했다. 엄마는 대답 대신 아버지의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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