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46 같은 반찬인데 엄마만 짜다고 하셨다 저녁 식탁에는 평소 자주 먹던 반찬이 올라와 있었다. 멸치볶음과 나물, 계란찜을 가운데 놓고 각자 밥을 덜어 먹기 시작했다. 몇 숟갈 드시던 엄마가 나물 한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오늘 음식이 왜 이렇게 짜?” 나도 나물을 한입 먹어 봤다. 평소보다 짜게 무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별말 없이 식사를 계속하셨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엄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음식이 짠 게 아니라 내 입안이 짠 것 같아.” 처음에는 반찬 간이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다르게 들렸다. 엄마는 다시 밥을 드셨지만 중간중간 물컵을 평소보다 자주 들었다.반찬의 간보다 엄마가 한 말이 더 걸렸다같은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맛을 조금씩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음식의 맛은 혀에서 느끼는 맛뿐 아니라 .. 2026. 8. 25. 독감은 여러 줄인데 폐렴구균은 한 줄이었다 예방접종 수첩에는 몇 년 전 날짜가 듬성듬성 적혀 있었다. 독감이라고 적힌 줄은 여러 개였지만 폐렴구균 옆에는 날짜 하나만 남아 있었다. 최근에 병원에서 맞은 주사 중에는 수첩에 적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부모님은 독감 예방접종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다. 병원 앞에 예방접종 안내문이 붙기 시작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독감 소식이 나오면 두 분 중 한 분이 꼭 물으셨다. “우리 작년에 맞았지?” 엄마가 물으면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맞은 것 같다고 하셨다. “폐렴주사도 그때 같이 맞지 않았나?” 이번에는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셨다. 독감은 동네 내과에서 맞은 해가 있었고, 폐렴구균은 보건소에서 맞았던 것 같다고 하셨다. 어느 해에는 두 분이 같은 날 접종했지만 다른 해에는 날짜가 달랐다. 몇 년이.. 2026. 8. 22. 전화가 울리는데 엄마는 식탁부터 살피셨다 “엄마, 전화 와.” 거실 쪽에서 벨소리가 울리자 엄마는 식탁 위 우편물을 들춰 보셨다. 휴대전화는 없었다. 이번에는 소파 옆을 살폈지만 전화는 그사이 끊겼다. “아까 여기 뒀는데 어디 갔지?” 잠시 뒤 엄마가 입고 있던 조끼 주머니가 짧게 진동했다. 엄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여기 있었네. 소리는 들었는데 주머니에 넣은 건 생각이 안 났어.” 부재중 전화는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있을 때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휴대전화는 왜 가지고 다녀?" 하고 한마디씩 하셨다. 엄마는 서둘러 다시 전화하려고 화면을 켰다. 그런데 잠금 화면에 떠 있던 문자 알림을 먼저 눌렀다. 통화 기록이 아니라 문자창이 열렸다. "아이고, 이게 아니네." 첫 화면으로 돌아온 .. 2026. 8. 19. 잠깐 앉는 시간이 다음 걸음을 바꿨다 마트에서 장을 거의 다 본 뒤였다. 카트 안에는 우유와 두부, 채소 몇 가지가 들어 있었고 계산대 앞에는 서너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이 적은 줄을 찾느라 계산대 쪽을 살피는 동안 엄마는 말없이 고객센터 옆 의자로 걸어가셨다. 작은 의자 두 개 중 하나가 비어 있었다. 엄마는 장바구니를 발밑에 내려놓고 천천히 앉으셨다. 마트 안을 오래 돌아다닌 것도 아니었다. 필요한 물건을 적어 왔기 때문에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채소 가격을 비교하며 카트를 직접 밀기도 했다. 엄마가 의자로 간 뒤 나는 카트를 계산대 줄에 세웠다. 줄이 한 칸씩 앞으로 움직이는 동안 엄마는 휴대전화를 보거나 벽에 기대 눈을 감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다. 계산을.. 2026. 8. 16. 엄지발톱 한쪽에 남은 검은 흔적 엄마는 식탁 한쪽을 닦은 뒤 작은 수건을 펼쳤다. 수건 위에는 손잡이가 긴 발톱깎이와 손톱 줄, 휴지 몇 장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아버지는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양말을 벗으셨다. 양쪽 엄지발톱은 다른 발톱보다 두껍고 어두웠고, 한쪽에는 유난히 검게 보이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표면은 매끈하지 않았고 한쪽 가장자리는 위로 들린 채 비스듬히 자라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테니스를 친 아버지는 코트에서 급하게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때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고 했다. 운동을 마친 날이면 엄지발가락이 운동화 앞쪽에 눌린 느낌이 남을 때도 있었다. “양말에 자꾸 걸리니까 짧게 잘라 줘.” 아버지가 발끝을 내밀었지만 엄마는 발톱깎이를 바로 대지 않았다. 어두운 부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발톱 끝이 들린 곳은 없는.. 2026. 8. 11. 엄마는 지팡이가 아직 필요 없다고 하셨다 엄마는 지팡이를 들고 나가는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아주 늙고 약한 사람으로 볼 것 같다고 했다. 넘어질 때 몸을 받쳐 주는 도구라는 내 설명보다, 지팡이를 든 자신의 모습이 먼저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시장에서 엄마가 장바구니를 몸 가까이 붙여 들던 모습과 비가 온 다음 날 보도블록을 오래 살피던 장면을 자꾸 떠올렸다. 집에서도 양말을 신고 방향을 바꿀 때면 신발장 문을 손으로 짚는 날이 있었다. 엄마는 아직 혼자 잘 걷는다고 했지만, 나는 넘어지고 난 뒤에야 지팡이를 찾게 될까 봐 걱정됐다. 신발장 아래칸을 정리하다 오래된 접이식 지팡이 하나를 발견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외할머니가 사용하던 지팡이였다. 손잡이에는 잔잔한 꽃무늬가 있었고 바닥에 닿는 고무 부분은 한쪽이 조금 .. 2026. 8. 10.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