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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지팡이가 아직 필요 없다고 하셨다

by 브라보인생 2026. 8. 10.

엄마는 지팡이를 들고 나가는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아주 늙고 약한 사람으로 볼 것 같다고 했다. 넘어질 때 몸을 받쳐 주는 도구라는 내 설명보다, 지팡이를 든 자신의 모습이 먼저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 말을 들은 뒤에도 나는 시장에서 엄마가 장바구니를 몸 가까이 붙여 들던 모습과 비가 온 다음 날 보도블록을 오래 살피던 장면을 자꾸 떠올렸다. 집에서도 양말을 신고 방향을 바꿀 때면 신발장 문을 손으로 짚는 날이 있었다. 엄마는 아직 혼자 잘 걷는다고 했지만, 나는 넘어지고 난 뒤에야 지팡이를 찾게 될까 봐 걱정됐다. 신발장 아래칸을 정리하다 오래된 접이식 지팡이 하나를 발견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외할머니가 사용하던 지팡이였다. 손잡이에는 잔잔한 꽃무늬가 있었고 바닥에 닿는 고무 부분은 한쪽이 조금 닳아 있었다. 접었다 펴 본 뒤 현관 벽에 세워 두자 거실에 있던 엄마가 그쪽을 바라봤다. “이건 정말 못 걷는 사람이 쓰는 거잖아.” 엄마는 손잡이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지팡이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는 허리가 불편하거나 바닥이 미끄러운 날에만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매일 들고 다니자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사용 횟수가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에게 지팡이는 몸보다 나이를 먼저 보여 주는 물건이었다

 

현관에서 접이식 지팡이를 바라보지만 선뜻 손을 뻗지 않는 고령의 어머니와 옆에서 지켜보는 중년의 딸

 

엄마는 시장이나 병원에서 또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자주 보았다고 했다. 손잡이를 짚으며 걷는 모습에서는 편안함보다 걱정스러운 인상이 더 크게 남았던 모양이다. 지팡이를 든 사람에게 길을 비켜 주거나 먼저 지나가라고 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나는 그런 대접받고 싶지 않아.” 길을 양보받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엄마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혼자 장을 보고 버스를 타며 집안일도 하는데, 지팡이를 드는 순간 지금까지 해 오던 일상보다 나이와 약한 몸이 먼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안경이나 보청기처럼 필요한 기능을 보완하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엄마는 안경을 쓴 사람은 흔하지만 지팡이는 멀리서 보아도 금방 눈에 띈다고 했다. 엄마는 현관에 선 채 운동화 한 켤레를 꺼냈다. 지팡이 쪽으로 향하던 시선은 잠시 머물렀다가 신발 끈으로 내려갔다. 운동화를 신은 뒤에는 손바닥으로 현관장을 한 번 짚고 몸을 세웠다. 

넘어지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최근 엄마의 걸음을 보며 마음에 남은 장면은 하나가 아니었다. 비가 온 다음 날 아파트 화단 옆에서는 젖은 바닥을 오래 살폈고, 시장에서는 가게 앞 턱을 넘기 전에 발끝으로 높이를 확인했다. 집 안에서도 급히 방향을 바꾸기보다 잠시 멈췄다가 다음 발을 내디뎠다. 그런 모습이 곧바로 지팡이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닐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나 오래 걷는 날에만 가지고 가도 되잖아요.” 엄마는 현관 바닥의 지팡이에서 시선을 떼고 내 얼굴을 먼저 바라봤다. “필요한지는 내가 알지.” 그 이야기에는 더 이어질 자리가 없었다. 나는 함께 다니며 본 모습을 무시하기 어려웠고, 엄마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유로 지금의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넘어질 가능성을 줄인다는 말도 엄마에게는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었다. 어느 손으로 짚어야 하는지도 몸의 불편한 부위와 보행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의료진이나 재활 전문가에게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하지만 그 설명까지 꺼내자 지팡이 하나 때문에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야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대화는 사용법을 확인하는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현관에 놓인 것은 아직 엄마의 지팡이가 아니라, 가족이 먼저 꺼내 놓은 오래된 물건이었다.

꺼내 놓은 지팡이는 엄마의 몸에도 맞지 않았다

다음 날 낮, 현관 벽에 세워 둔 지팡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접이식 연결 부분이 완전히 고정되지 않았고 높이 조절 버튼도 한 번에 눌리지 않았다. 지팡이를 바닥에 눕힌 뒤 금속 버튼을 여러 차례 눌러 보았다. 한 칸 늘리면 너무 길어 보였고 다시 줄이면 손잡이가 낮았다. 엄마가 현관으로 나와 손잡이를 잡았다. 꽃무늬가 있는 손잡이는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였지만 손바닥을 받치는 부분이 좁고 단단했다. 힘을 조금 주자 손목이 바깥쪽으로 꺾였다. 바닥의 고무 부분도 한쪽이 닳아 있었다. 지팡이를 세우자 끝부분이 바닥에 반듯하게 닿지 않고 미세하게 기울었다. 엄마는 거실 쪽으로 몇 걸음 움직여 보았다. 발을 내딛는 방향보다 지팡이 끝이 어디에 놓이는지를 먼저 내려다봤다. 손과 발의 순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걸 쓰면 걷는 데 더 신경이 쓰이겠네.” 엄마는 손잡이를 놓고 손바닥을 몇 번 폈다 접었다. 새 지팡이를 사자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바닥에 놓인 지팡이를 다시 접으려 했지만 뻑뻑한 버튼은 손톱으로 세게 눌러야 겨우 들어갔다. 접힌 지팡이를 신발장 옆에 세우자 연결 부분이 완전히 맞물리지 않은 채 조금 벌어져 있었다.

가족의 말이 보태질수록 지팡이는 더 멀어졌다

저녁에 아버지가 현관에 놓인 지팡이를 발견했다. 내가 엄마에게 한 번 사용해 보라고 꺼내 놓았다고 하자 아버지도 비 오는 날에는 짚고 다녀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식탁 위에 놓인 귤 하나를 집어 들었다. 대답 대신 귤껍질을 길게 벗긴 뒤 조각을 하나씩 떼어 접시 가장자리에 놓았다. 아버지는 보도블록이 고르지 않은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덧붙였고, 나는 최근 시장에서 본 엄마의 걸음을 다시 설명했다. 두 사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의 손만 계속 움직였다. 귤껍질을 한데 모아 접은 뒤 빈 접시 위에 올려놓고는 텔레비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팡이를 권하는 말이 늘어날수록 자신의 몸을 가족이 대신 판단한다는 느낌도 커지는 듯했다. 아버지가 텔레비전 소리를 높이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지팡이는 그대로 현관에 있었지만 그날 저녁에는 아무도 다시 손에 들지 않았다.

비가 오는 아침에도 엄마는 지팡이를 들지 않았다

 

비 오는 아침 현관에서 접이식 우산을 손목에 걸고 분리수거 봉투를 든 고령의 여성

 

빗소리가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던 아침이었다. 엄마는 분리수거 봉투를 묶은 뒤 현관에서 우산을 골랐다. 투명한 비닐우산을 들었다가 손잡이가 미끄러워 보였는지 다시 내려놓고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신발장 옆에는 접어 둔 지팡이가 그대로 서 있었다. 엄마의 시선이 잠시 그쪽에 닿았다. 손은 지팡이가 아니라 운동화 뒤축으로 향했다. 발을 넣은 뒤 손가락으로 접힌 부분을 펴고 신발 끈을 천천히 당겼다. 엄마는 접이식 우산의 끈을 손목에 걸었다. 분리수거 봉투는 다른 손으로 들지 않고 현관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다. 문을 먼저 열어 빗줄기를 살핀 뒤 봉투를 다시 집어 들었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엄마는 봉투를 내려놓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문턱을 한 번 내려다본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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