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2

약을 다 먹은 뒤 며칠 지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후에 전화벨이 울렸다.엄마가 전화를 받았다.“네.”“네, 알겠습니다.”통화는 길지 않았다.엄마는 전화를 끊고 잠시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왔다.“병원에서 전화 왔어.”“병원에서?”“응. 검사하러 오라고 하네.”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평소 하던 일을 이어갔다.그런데 방금 전까지 아무 표시도 없던 하루에 병원에 가야 할 날 하나가 생겨 있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아침에는 헬리코박터균 치료약을 챙기는 순서가 있었다.아침 식사를 마치면 약 봉투를 꺼내고, 약을 드신 뒤 물을 마셨다.마지막 약을 먹던 날 엄마가 봉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이제 다 먹었네.”빈 약봉투가 식탁에서 치워지면서 그날 아침의 약 복용도 끝났다.며칠 뒤 병원에서 전화가 오자 그다음 일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전화가 끝난 뒤.. 2026. 7. 11.
두세 시간마다 깨던 엄마의 밤, 시계를 돌려놓은 뒤 달라진 것 아침을 먹다가 엄마가 전날 밤 이야기를 꺼내셨다.“어제는 두 시쯤 깼어.”나는 자연스럽게 몇 번이나 깼는지 물었다.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두 시에 깨서 화장실 갔다가 다시 잤어. 그다음에는 아침 가까이 한 번 깼고.”그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자신의 밤을 기억하는 방법은 단순히 몇 시간 잤는지를 세는 것이 아니었다. 몇 시에 눈을 떴는지, 그때 무엇을 했는지, 다시 잠들었는지까지 한 묶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그동안 나는 엄마에게 “어젯밤 몇 시간 잤어요?”라고 묻는 일이 많았다. 잠을 얼마나 잤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 동안 잠을 잤다고 해도 다음 날 엄마의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피곤해했고, 어떤 날은 평소처럼 움직였다.두세 시간마다 깨는 횟수만으로는 엄마.. 2026. 7. 10.
냉장고 안 감자 두 개가 며칠 동안 달라졌다 점심을 준비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안쪽에 감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며칠 전에 사다 놓은 감자였다. 크기도 비슷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나는 두 개를 꺼내 껍질째 쪘다.그날은 한 번에 다 먹지 못해 감자 반쪽이 남았다. 예전 같으면 남은 음식부터 치우려고 했을 텐데, 그날은 작은 용기를 꺼내 감자를 담았다.뚜껑을 닫아 냉장고 안쪽에 넣었다.처음에는 그냥 남은 음식 하나를 넣어 둔 것뿐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 반쪽짜리 감자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점심에 남은 반쪽을 넣어 두었다저녁 무렵 냉장고를 열다가 점심에 남겨 둔 감자를 다시 봤다.용기 안에는 반쪽짜리 감자가 그대로 있었다.처음 쪘을 때의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모습과는 달랐다. 차갑게 식어 있었고 잘라진 면도 그대로.. 2026. 7. 10.
전신마취를 앞둔 아버지가 계속 물으셨던 것 아버지가 무릎 수술을 받은 뒤 병실로 돌아오셨을 때였다.아버지는 한동안 눈을 감고 계셨다. 말을 걸어도 바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천천히 눈을 뜨더니 내 쪽을 바라보셨다.나는 물컵을 가까이 가져갔다.아버지는 잠시 컵을 바라보다가 물을 조금 마셨다.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수술 전부터 계속 들었던 한마디가 떠올랐다.“이번에도 완전히 재우는 건가?”물 한 모금으로 장면이 이어졌다당시 아버지는 일흔일곱 살이셨다. 수술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도 아버지가 자주 물으신 것은 무릎보다 마취에 관한 것이었다.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는지, 수술이 끝나면 언제쯤 깨어나는지 궁금해하셨다.처음에는 수술을 앞둔 사람이 당연히 궁금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들은 설명을 다시 말씀드리기도 했다.그런데 같은 .. 2026. 7. 10.
당뇨 전단계 결과표를 다시 보니 숫자보다 먼저 보인 것이 있었다 아버지가 건강검진 결과표를 들고 식탁으로 오셨다.저녁을 먹다가 종이를 내 앞으로 밀어놓으시더니 물으셨다.“이거 보면 밥도 줄여야 하는 거야?”나는 결과표를 받아 들었다.평소라면 숫자부터 찾았을 텐데 그날은 종이를 펼친 채 잠시 멈췄다.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같은 검사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숫자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만으로 아버지가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결과표에는 검사 날짜와 항목, 측정된 수치는 있었지만 아버지가 전날 무엇을 먹었는지, 아침에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그때부터 나는 이 종이에 적힌 내용과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을 나눠서 보기 시작했다.식탁 위에 결과표가 놓였다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보면 이상하게 숫자부터 찾게 된다.나도 그랬다. 기.. 2026. 7. 9.
두근거린다는 말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침을 드시다가 전날 밤 이야기를 꺼내셨다.“어제는 좀 이상했어.”며칠 전부터 가끔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것 같더라.”나는 처음에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그런데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하셨다.“그런데 두근거린다는 게 맞나 모르겠네.”가슴 앞을 가볍게 짚으며 한참 생각하셨다.“빨리 뛴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한 번 쿵 한 것 같았어.”그리고는 더 설명하지 않고 식사를 이어가셨다.처음 들은 말에 나도 그대로 생각했다처음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심장이 평소보다 빨리 뛰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두근거린다’는 말이 워낙 익숙해서 그 안에 어떤 느낌이 들어 있는지 굳이 따져 보지 않았다.그런데 며칠 뒤 다시 이야기가 나.. 2026. 7. 9.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