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밤에는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뛰는 느낌 때문에 잠에서 깨셨다. 느낌은 밤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전날 밤의 일을 비슷한 말로 설명하셨다. “어젯밤에도 심장이 좀 이상했어.” 낮의 모습만 보면 전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아침을 드셨고 장을 보러 나가거나 테니스 약속을 확인하셨다. 50년 가까이 운동해 온 분이라 가족도 처음에는 피곤해서 잠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많이 한 날이었는지, 잠을 설친 것은 아닌지를 먼저 물었다. 그렇게 몇 번의 밤을 지나면서 처음의 짐작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면 아버지는 다시 멀쩡해 보였고, 전날 밤의 서로 다른 느낌은 모두 ‘두근거림’이라는 한 단어로 줄어들었다. 진료실에서 그날 밤을 설명하려면 ‘두근거림’이라는 말 뒤에 시작된 순간과 이어진 시간, 그때 함께 나타난 느낌을 하나씩 다시 꺼내야 했다.
같은 두근거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밤들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밤을 모두 “심장이 이상했다”라고 묶어 말씀하셨지만, 자세히 들으면 표현은 밤마다 달랐다. “그날은 빨리 뛰었어.” “어제는 하나씩 건너뛰는 것 같더라.” “한 번 울컥하고 올라왔어.” 시작된 순간도 같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누워 있을 때 시작된 적이 있었고, 깊이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뜬 날도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누웠을 때 불편해진 적도 있었다. 이어진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몇 분 만에 가라앉은 날에는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다. 반대로 불규칙한 느낌이 계속돼 시계를 여러 번 본 날도 있었다. 한 번은 새벽에 시작된 불편이 아침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함께 나타난 불편도 매번 같지는 않았다. 가슴이 심하게 아프거나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다. 가족은 두근거림이 있을 때 숨이 차거나 어지러운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지도 확인했다.
한 단어 대신 그날 밤의 순서를 적었다
매일 맥박과 생활을 기록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아침과 저녁의 맥박을 재고, 운동 시간과 식사 내용까지 모두 적으면 원인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록할 항목이 많아질수록 아버지가 하루 종일 자신의 심장만 의식하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증상이 없었던 날은 적지 않았다. 두근거림이 나타난 날에만 그 한 번의 일을 짧게 남겼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지, 잠들기 전부터 불편했는지부터 적었다. 시계를 본 시간이 있었는지, 물을 마셨는지, 누워 있기 힘들어 거실로 나왔는지도 순서대로 남겼다. 어떤 날에는 아버지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아 계셨다. 손으로 가슴을 누르지는 않았지만 몸을 기대고 한동안 숨을 고르셨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도 다시 눕지 못하고 텔레비전이 꺼진 화면을 바라보셨다. 그런 밤에는 단순히 ‘두근거림 있음’이라고 적지 않았다. ‘새벽 두 시쯤 자다가 깸. 처음에는 빠르게 뛰는 느낌. 물을 마시고 거실에 앉아 있음. 한 시간쯤 지나 조금 가라앉음.’ 다른 날에는 ‘누운 뒤 박자가 한 번씩 빠지는 느낌. 몇 분 뒤 사라짐.’이라고 적었다. 같은 두근거림이라는 말 대신 그날 밤의 순서를 남기니 서로 다른 증상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정확한 의학 용어를 붙이기보다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그날 밤을 다시 설명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사용한 표현을 그대로 적었다.
진료실에서는 증상보다 순서가 도움이 됐다
진료실에서는 “가끔 두근거려요”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거기서 설명이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은 적어 둔 내용을 보면서 이어 갔다. 어느 밤은 짧게 끝났고 어느 밤은 잠에서 깬 뒤에도 오래 이어졌다는 차이를 설명하자, 아버지도 기억나는 상황을 하나씩 덧붙이셨다. 두근거림과 함께 나타난 변화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했다. 의사는 아버지의 운동 경력과 기존 질환, 복용 중인 약을 함께 확인했다.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다 보니 진료실에서는 이미 두근거림이 가라앉은 날도 있었다. 검사와 진료를 받은 뒤 아버지는 부정맥으로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진단 뒤에도 증상이 나타난 밤은 짧게 남겼다
약물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매일 심장 상태를 기록하지 않았다. 두근거림이 다시 느껴진 날에만 언제 시작됐는지, 얼마나 이어졌는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짧게 적었다. 아버지가 “어젯밤에도 좀 이상했어”라고 말씀하시면 그 한마디로 끝내지 않고 빠르게 뛰었는지, 박자가 건너뛰는 것처럼 느껴졌는지를 물었다. 다음 진료 때는 기억에 의존하기보다 그동안 적어 둔 기록 가운데 증상이 있었던 날을 골라 보여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