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대파도 사고 두부도 사고, 생선도 조금 살 생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한 번 떠올리고 바로 현관을 나섰을 텐데, 그날은 집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먼저 한마디를 하셨다.
“시장 가기 전에 화장실부터 갔다가 가자.”
나는 잠깐 멈췄다.
장을 보러 가는 날인데 화장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외출하기 전에 미리 다녀가자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날 장보기에서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살 물건이 아니라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을 먼저 들렀다
시장에 도착해서도 엄마는 물건부터 찾지 않으셨다.
입구 쪽을 지나면서 화장실 표지를 먼저 확인했다.
“화장실 저쪽에 있네.”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를 따라갔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조금 의외였다.
그때까지 나는 시장에 오면 무엇을 살지부터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은 물건을 고르기 전에 엄마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 하나가 먼저 정해져 있었다.

시장 안에서 자리를 확인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평소처럼 가게를 둘러봤다.
대파를 고르고 두부를 살펴보고 생선 가게 앞에도 잠시 멈췄다.
나는 옆에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장바구니에 넣었다.
아까 확인한 화장실은 더 이상 장보기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장실을 먼저 찾는 것이 시장에 오래 머무르기 위한 준비처럼 느껴졌는데, 실제로는 그 장소를 한번 확인하고 나니 이후에는 시장을 평소처럼 둘러볼 수 있었다.
장보기는 그대로 흘러갔다
엄마는 대파를 고르고 두부도 골랐다.
나는 옆에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장바구니에 넣었다.
사람이 많은 골목을 지날 때도 있었고, 생선 봉투를 들고 다른 가게로 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은 화장실을 다시 찾을 일 없이 장보기를 마쳤다.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걱정해서 계속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장소를 한 번 확인해 두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원래 하던 일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장을 빨리 보고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시장에 사람이 많으면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은 장바구니에 무엇을 담는 일과 함께, 그곳에서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조건도 외출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필요한 곳은 사람마다 달랐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처럼 한 번 들어가면 한동안 머무는 곳에서는 무엇을 살지 정하는 것 외에도 미리 확인해 두면 편한 장소가 있을 수 있다.
화장실처럼 꼭 필요할 수 있는 곳은 입구 안내판이나 층별 안내도에서 위치를 확인해 두면 나중에 급하게 찾을 때 조금 덜 당황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면 주차장이나 출입구에서 화장실까지 어느 방향인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모든 외출에서 부모님에게 여러 가지를 미리 확인하게 할 필요는 없다.
외출 장소와 시간, 이동 거리, 평소 생활 습관에 따라 필요한 준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주차장이 가까운 것이 중요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앉아서 쉴 곳이 필요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화장실 위치를 먼저 알아두는 것이 외출을 편하게 만드는 준비일 수 있다.
그날 엄마에게는 그게 화장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나가 남았다
장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장바구니에는 대파와 두부가 들어 있었고, 생선 봉투도 따로 들고 있었다.
집에 거의 다 와갈 때쯤 엄마가 문득 말씀하셨다.
“다음에 와도 저쪽에 화장실 있는 건 알겠네.”
나는 “그러네” 하고 대답했다.
그날 시장에서 새로 알게 된 것은 많지 않았다.
어느 가게에서 대파를 파는지, 두부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다음에 가면 또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다음 외출에도 그대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엄마는 평소처럼 장바구니를 정리하셨다.
나는 냉장고에 두부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에 시장에 갈 일이 생기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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