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뉴스를 보다가 엄마가 물으셨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나는 방금 했던 말을 한 번 더 전했다.
엄마가 이번에는 내 얼굴을 보며 물으셨다.
“뭐라고?”
아버지는 리모컨을 들었다.
TV 소리를 한 칸 올렸다.
엄마는 잠시 듣다가 말했다.
“그렇게 크게 하지 마. 뉴스 소리가 너무 커.”
아버지는 다시 한 칸 내렸다.
나는 엄마 쪽으로 몸을 돌려 같은 내용을 조금 천천히 전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저녁 뉴스와 가족 대화는 몇 번씩 끊겼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찾았고, 나는 놓친 말을 되풀이했고, 엄마는 들리지 않았던 부분을 되물었다.
누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대화가 이어지려면 매번 누군가가 다른 행동을 해야 했다.
한마디가 끊길 때마다 집 안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엄마가 내 말을 놓치면 나는 같은 내용을 다시 전했다.
아버지는 TV 소리를 확인했다.
엄마는 잘 들리지 않았던 부분을 다시 물었다.
세 사람의 대응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에는 내가 엄마 가까이 앉았다.
어떤 날에는 아버지가 리모컨으로 TV 소리를 낮췄다.
엄마가 먼저 “다시 말해 줘”라고 하는 날도 있었다.
나는 한동안 이런 일을 단순하게 생각했다.
엄마가 잘 듣지 못하면 소리를 조금 키우거나 내가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같은 일이 계속되자 한 가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TV 소리를 조절하는 사람과 말을 다시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엄마가 되묻는 순간에도 가족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대화가 끊기는 순간마다 작은 움직임이 하나씩 생기고 있었다.
리모컨을 움직여도 말까지 따라오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TV 소리를 두 칸 올렸다.
엄마는 바로 말했다.
“너무 커.”
아버지가 다시 낮췄다.
나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TV에서 뉴스가 이어지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
뉴스 진행자의 말이 끝난 뒤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엄마가 내 말을 들었다.
또 다른 날에는 TV 소리가 크지 않았는데도 엄마가 내 말을 되물었다.
그때는 아버지가 리모컨을 집지 않았다.
내가 엄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 내가 다시 말할게.”
엄마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같은 “뭐라고?”라는 말이 나와도 그다음에 필요한 행동은 매번 같지 않았다.
TV 소리를 낮춰야 할 때도 있었고, 말을 다시 해야 할 때도 있었고, 잠시 기다렸다가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가 말을 놓쳤다는 사실과 TV 소리가 크다는 사실을 하나의 문제처럼 다루지 않게 됐다.
청력검사를 받은 뒤 엄마가 기억해 온 말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를 받고 돌아왔다.
식탁에 앉은 엄마가 가방에서 검사 결과지를 꺼냈다.
“오늘 청력검사 했잖아.”
“응. 결과는 어때?”
엄마는 결과지를 한번 내려다봤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소리가 안 들리는 것만 문제는 아니래.”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무슨 말이야?”
엄마가 말했다.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수도 있대.”
엄마는 검사실에서 작은 소리가 들릴 때 버튼을 누르는 검사를 했고, 사람의 말을 듣고 다시 말하는 과정도 있었다고 했다.
성인의 청력평가에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뿐 아니라 말소리를 얼마나 알아듣는지 등을 확인하는 평가가 함께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는 TV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상황에서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불편한지를 의료진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엄마는 검사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대신 검사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소리 듣는 거랑 사람 말 듣는 거랑 따로 보는 것 같더라.”
나는 결과지를 다시 엄마 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날은 검사 결과를 가지고 가족끼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평소 어떤 순간에 말을 놓치는지를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게 됐다.
검사실에서 있었던 일은 저녁 식탁까지 이어졌다
엄마는 검사실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검사실 들어가니까 조용했어.”
엄마는 손으로 헤드폰을 쓰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이 소리가 들리면 버튼 누르라고 했어.”
“큰 소리였어?”
“아니. 아주 작은 소리도 있었어.”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기다리다가 작은 소리가 들리면 버튼을 눌렀다고 했다.
한쪽 귀를 검사한 뒤에는 반대쪽 귀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사람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들리는 말을 내가 다시 말해 보라고 했어.”
엄마는 정확한 문장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는지와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지를 따로 살펴본 과정은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검사 결과지를 다시 읽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말을 들을 때 어떤 상황이 편하고 어떤 상황이 불편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TV를 보면서 동시에 말을 걸면 놓치는 경우가 있었고, 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쉽게 이어졌다.
그 차이는 병원에서 받은 숫자를 해석하는 것보다 우리 집에서 바로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말을 건네는 위치부터 조금씩 바뀌었다
그날 이후 엄마에게 말을 걸 때 나는 뒤에서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 할 말이 있으면 먼저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돌아보면 그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TV에서 뉴스가 크게 나오는 순간에는 잠시 기다렸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고 있으면 엄마가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지 살핀 뒤 이야기를 이어 갔다.
엄마도 잘 듣지 못한 말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다시 말해 줘.”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같은 문장을 더 크게 반복하기보다 짧게 나누어 말했다.
아버지도 예전처럼 무조건 리모컨부터 찾지는 않았다.
TV가 너무 크다는 엄마의 말이 나오면 소리를 낮췄고, 엄마가 사람의 말을 놓쳤다면 그 사람이 다시 이야기하도록 기다렸다.
이런 변화는 가족회의에서 정한 규칙이 아니었다.
한마디가 끊길 때마다 그다음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 서로 조금씩 익혀 간 결과였다.
나에게도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예전에는 엄마가 “뭐라고?”라고 하면 내가 말을 더 크게 해야 한다고 먼저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어디에서 말을 걸었는지, TV가 어떤 상태였는지, 엄마가 내 쪽을 보고 있었는지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같은 말을 크게 반복하기보다 먼저 말을 건네는 위치를 바꾸는 날이 생겼다.
결과지를 해석하는 일과 대화를 이어 가는 일은 달랐다
엄마의 검사 결과지를 다시 펼쳐 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숫자와 선이 표시된 종이를 우리가 직접 해석할 수도 없었다.
보청기가 필요한지, 치료나 추가 평가가 필요한지는 진료를 통해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까지 미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말을 놓쳤다면 얼굴을 보고 다시 말하기, 주변 소리를 줄이기,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지 않기처럼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한 방법은 그날부터 적용할 수 있었다.
특히 가족이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할게”라고 먼저 목소리만 높이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서 말을 놓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실제 대화에서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엄마 역시 들리지 않은 말을 추측해서 넘기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묻는 것이 오히려 대화를 짧게 끝내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검사 결과가 우리 가족의 대화법을 완성해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끊기던 대화 속에서 무엇을 바꾸면 되는지는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텔레비전 앞에서 가족이 기다리는 순간이 생겼다

며칠 뒤 저녁에도 같은 뉴스가 나왔다.
엄마가 소파에 앉았고 아버지는 리모컨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서 차를 마시다가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뉴스 소리가 잠시 커졌다.
나는 말을 멈췄다.
뉴스가 끝난 뒤 엄마가 나를 바라봤다.
“아까 뭐라고 하려고 했어?”
나는 그때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번에는 엄마가 한 번에 들었다.
아버지도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예전 같으면 대화가 끊긴 순간부터 TV 소리를 먼저 조절했을 것이다.
그날은 아무도 바로 리모컨을 움직이지 않았다.
말을 건네는 사람은 잠시 기다렸고, 듣는 사람은 다시 물었고, 다른 사람은 그 대화가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았다.
청력검사의 결과가 우리 가족에게 모든 답을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서 매번 반복되던 짧은 끊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때그때 말을 이어 가는 방법은 생겼다.
같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도 대화를 이어 가는 데 필요한 것은 TV 소리의 크기 하나만이 아니었다.
누가 말을 건네는지, 서로 얼굴을 보고 있는지, 주변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말을 놓쳤을 때 다시 물을 수 있는지도 함께 작용했다.
우리 집에서는 요즘 TV 소리가 커지면 누군가 바로 리모컨을 찾기보다, 먼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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