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부모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낮에도 부모님이 집 안에서 불을 켜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친구는 부모님이 낮에는 불을 잘 켜지 않으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아버지가 낮에도 전등을 켜놓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에 햇빛이 들어와 거실이 환한 날에도 아버지는 전등을 켜놓으셨다.
나는 그동안 그 모습을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
내 눈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불을 껐다
우리 집은 식탁이 있어도 아침을 꼭 식탁에서 먹지는 않는다.
쟁반에 밥과 반찬을 조금씩 담아 거실로 가져와 TV를 보면서 먹는 날이 종종 있다.
그런 아침이면 나는 거실 불을 잘 켜지 않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V 화면도 잘 보였고 소파 앞 바닥도 환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달랐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치셨다. 한쪽 다리를 편하게 앞으로 뻗고 신문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천천히 기사를 읽으셨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은 소파 옆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실을 지나가다 전등이 켜져 있으면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잠시 후 아버지가 신문에서 눈을 떼고 거실을 둘러보셨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위치를 눌렀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불을 왜 또 꺼놨어?”
나는 다시 끄기도 했고,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며칠 반복됐다.
아버지가 불을 켜는 순간을 다시 보게 됐다
어느 날에는 아버지가 신문을 다 읽고 소파 옆 탁자에 내려놓으셨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을 벗고 탁자 위에 있던 리모컨을 찾으셨다.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을 때는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소파에서 일어나 몇 걸음 옮기자 아버지는 다시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불이 켜진 뒤에는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찾아 손에 쥐고 다시 소파에 앉으셨다.
또 다른 날에는 신문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작은 글씨를 한참 들여다보셨다.
그때도 거실 불은 켜져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창문 사이의 밝기만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을 따라가 보니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이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주변을 살필 때, 같은 거실이어도 아버지가 바라보는 곳은 달랐다.
소파에서 현관까지 따라가 보니 달랐다
며칠 뒤 아버지가 외출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소파 옆 탁자에서 안경을 챙기고 현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셨다.
거실에서는 햇빛이 환했지만 복도로 들어서자 창문에서 멀어진 바닥에 소파와 장식장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벽 쪽으로 손을 뻗어 불을 켠 뒤 다시 현관으로 걸어가셨다.
현관에 도착해서는 신발장 위에 놓인 모자를 집어 들고 신발을 신으셨다.
나는 거실에서 보던 밝기만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집 안을 이동하는 동안 바라보는 곳은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을 때와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갈 때를 같은 밝기로 생각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위치보다 아버지를 먼저 보게 됐다
그 뒤로 거실을 지나가다 전등이 켜져 있어도 바로 스위치를 찾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있으면 그대로 두었고, 소파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찾고 있으면 잠시 지켜봤다.
어떤 날에는 전등이 켜진 채 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시기도 했다.
그때는 굳이 불을 끄지 않았다.
반대로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뒤에도 계속 불이 켜져 있으면 그때는 스위치를 끄기도 했다.
불을 켜고 끄는 기준을 하나로 정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된 것이다.
다음 날에도 아버지는 불을 켜놓으셨다
다음 날 아침에도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치셨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고 전등도 켜져 있었다.
나는 잠시 소파 맞은편에 앉아 아버지가 신문을 읽는 모습을 바라봤다.
신문을 넘길 때마다 아버지의 손이 종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번에는 전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도 바로 스위치로 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그 불빛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밝다고 느끼는 것과 아버지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언제나 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게 됐다.
그날 이후 낮에 거실 불이 켜져 있으면 스위치부터 찾기보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먼저 보게 됐다.
친구와 나눈 짧은 이야기는 우리 집의 전등 사용법을 정해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아버지의 불빛을, 그날그날의 생활 장면 속에서 바라보게 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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