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변비라고 말했을 때 나는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았는지부터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말하는 변비에는 날짜가 먼저 나오지 않았다.
그날도 엄마는 평소처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슬기국을 끓였는데 냄비를 열어보니 다슬기보다 배추가 더 많이 보였다.
엄마는 국을 평소보다 넉넉하게 담아 식탁에 가져오셨다.
식사를 하던 중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며칠 동안 못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께 다녀왔다고 했다.
나는 순간 별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다시 말했다.
“가긴 갔는데 시원하지가 않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생각하고 있던 ‘변비’와 엄마가 말하는 ‘변비’가 같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저 며칠이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변비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날짜를 떠올렸다.
어제 갔는지, 그저께 갔는지, 며칠 동안 못 갔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하루에 한 번 화장실에 가면 괜찮은 것 같았고, 며칠 동안 못 가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그저께 화장실에 갔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는 배변 횟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는 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고, 힘을 줘야 했으며, 한참 앉아 있어야 했다고 했다.
다 보고 나온 뒤에도 남아 있는 느낌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화장실에 갔다’는 말 하나만으로는 그날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동안 횟수를 결과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는 그보다 화장실에서 보낸 과정이 더 불편했던 것이었다.
엄마가 말한 ‘시원하지 않다’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러면 화장실은 갔는데 힘들었다는 거야?”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변이 딱딱한 날도 있었고, 힘을 많이 줘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오래 앉아 있다가 나온 뒤에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남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처음 했던 질문이 조금 단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만에 갔어?’라고 물으면 날짜는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엄마에게는 ‘그저께 갔다’는 사실보다 ‘갔는데도 시원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같은 배변을 두고도 나는 횟수를 이야기했고 엄마는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변비’라는 말을 다르게 듣게 됐다
변비라는 말을 생각할 때 꼭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 않은 경우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배변 횟수가 줄어드는 것뿐 아니라 변이 단단하거나 배변하기 어렵고, 지나치게 힘을 주거나 배변 후에도 잔변감이 남는 경우처럼 배변의 양상이 함께 중요할 수 있었다.
엄마가 이야기한 불편함도 바로 그 부분에 가까웠다.
화장실에 가지 못해서 생긴 불편함이 아니라,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제야 ‘갔느냐’와 ‘편하게 갔느냐’는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나의 숫자로 확인하려 했던 것을 엄마는 여러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차이를 알게 된 뒤부터 엄마가 변비라고 말할 때 예전처럼 날짜부터 세지 않게 됐다.
다슬기국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이유를 정하지는 않았다
그날 엄마는 다슬기국을 두 그릇 가까이 드셨다.
국 안에는 배추가 많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이렇게 먹어야 화장실 가기가 조금 낫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배추를 많이 먹으면 변비에 도움이 되는지부터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식 하나만으로 엄마의 상태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배변 상태에는 식사뿐 아니라 수분 섭취, 활동량, 생활 습관, 복용 중인 약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채소나 과일, 통곡물처럼 식이섬유가 들어 있는 음식을 식사에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인 배변 관리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특정 음식 하나를 먹었다고 해서 엄마의 불편함이 해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국을 많이 먹는 이유도 음식 하나의 효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부터 무엇 하나를 원인이라고 정하기보다 엄마가 실제로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먼저 듣기로 했다.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도 하나의 답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평소 물은 얼마나 마시는지도 물어봤다.
엄마는 식사할 때 마시고 약을 먹을 때도 마신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동안 마시는 양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 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수분 섭취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활동량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예전보다 걷는 시간이 줄어든 날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복용 중인 약도 있었다.
결국 배변 상태를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어느 하나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엄마가 말하는 불편함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아듣는 일이었다.
다음 날에는 날짜 대신 엄마의 대답을 들었다
다음 날 엄마가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나는 무심코 “며칠 만에 갔어?”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날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했다.
“이번에는 좀 편했어?”
엄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제보다는 나았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
그 짧은 대답으로도 전날과 오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라는 숫자 하나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이 엄마의 한마디에서는 조금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반복되거나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나면 따로 살펴야 했다
물론 모든 배변 불편함을 생활습관의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변비가 반복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식사만 바꾸면서 계속 지켜보기보다 의료진과 상담해 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혈변이나 검은 변, 지속적인 복통, 반복되는 구토, 발열, 가스가 나오지 않는 증상, 원인을 알 수 없는 체중 감소처럼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에도 진료를 받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진료할 때 함께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배변 상태를 바라보는 방식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갔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이제는 갔다는 사실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불편함이 남았는지, 평소와 달랐는지를 함께 듣게 됐다.
엄마가 변비라고 말할 때 내가 세고 있던 것은 날짜였다.
하지만 엄마가 말하고 있던 것은 그날의 배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지금은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말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한마디를 먼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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