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부모님의 혈압 기록지를 펼쳐 놓았을 때 유난히 눈에 띄는 숫자가 있었다. 집에서 잰 혈압은 비교적 일정했는데, 내과에 다녀온 날에만 수치가 높게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기록을 보자마자 “병원에 가면 원래 높게 나와”라고 하셨고, 엄마는 병원 자동 혈압계로 재면 집에서보다 수치가 더 높게 나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어느 혈압계가 더 정확한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짜 옆에 측정 당시의 상황을 적어 보니 다른 차이가 보였다. 병원에서는 주차장에서 빠르게 걸어온 직후 혈압을 쟀고, 집에서는 아침 식사 전에 의자에 앉아 쉬었다가 측정했다. 같은 사람의 혈압이라도 측정 직전의 움직임과 긴장, 자세가 달랐던 것이다. 병원에서 잰 혈압이 집보다 높게 나오는 이유를 알려면 숫자만 비교해서는 부족하다. 얼마나 쉬었는지, 다리를 꼬고 있었는지, 측정 중에 말을 했는지, 커프를 옷 위에 착용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높은 수치가 긴장 때문인지, 평소에도 이어지는 변화인지 구분하는 일도 필요하다.
도착하자마자 측정하면 평소 혈압과 달라질 수 있다
혈압은 하루 종일 한 숫자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걷거나 계단을 오른 뒤, 서둘러 움직였을 때, 통증이 있거나 긴장했을 때에는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주차장에서 빠르게 걸어와 곧바로 팔을 혈압계에 넣었다면 몸이 안정되기 전의 수치가 표시될 수 있다. 집에서는 비교적 편안한 상태인데 의료기관에서 반복적으로 높게 측정되는 경우를 백의고혈압이라고 한다. 병원 환경이나 진료 결과에 대한 긴장이 몸의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병원에 와서 긴장해서 그렇다”라고 말씀하시는 데에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병원에서 높게 나온 혈압을 모두 긴장 탓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의료기관에서는 정상에 가깝지만 집이나 일상생활 중에는 높게 나타나는 가면고혈압도 있다. 병원에서 한 번 높게 나왔다고 바로 고혈압이라고 판단할 수도 없고, 한 번 정상으로 나왔다고 평소 혈압까지 괜찮다고 확정할 수도 없는 이유다. 충분히 쉰 뒤 다시 측정한 결과와 집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잰 기록을 함께 살펴야 차이를 이해하기 쉽다. 의료진은 필요한 경우 가정혈압 기록이나 24시간 활동혈압검사를 통해 병원 밖에서 혈압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혈압계 앞에서는 5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혈압을 재기 전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적어도 5분 정도 조용히 쉬는 것이 권장된다. 등을 등받이에 기대고 두 발은 바닥에 평평하게 놓는다. 다리는 꼬지 않으며, 측정하는 팔은 책상이나 받침대 위에 편안하게 올려 커프가 심장 높이와 비슷해지도록 한다. 앉아 있는 동안 통화를 하거나 계속 대화를 나누면 충분히 안정된 상태가 되기 어렵다. 측정하는 동안에도 말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커프는 옷소매 위가 아니라 맨팔에 착용하고, 팔을 공중에 들고 있지 않도록 받쳐 주어야 한다. 측정 전 30분 안에는 운동하거나 담배를 피우고 카페인이 든 음료를 마시는 일을 피하는 것이 권장된다. 소변을 참은 상태도 혈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화장실을 먼저 다녀오는 편이 좋다. 목욕이나 식사 직후처럼 평소와 조건이 크게 달라지는 시간도 피하면 수치를 비교하기 쉬워진다. 병원에 도착해 숨이 차거나 몸에 열이 오른 상태라면 시계로 5분만 채우는 것보다 호흡과 긴장이 가라앉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5분 동안 쉬는 것은 혈압을 억지로 낮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방금 전 움직임의 영향을 줄여 안정된 상태에 가까운 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준비다.

높게 나왔을 때 바로 연속 측정해도 될까
화면에 예상보다 높은 숫자가 나타나면 곧바로 다시 측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쉬지 않은 채 연속해서 재면 처음 측정할 때의 긴장과 움직임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먼저 의자에 앉아 몸을 안정시키고, 다리와 팔의 자세가 올바른지 확인한 뒤 다시 측정하는 편이 좋다.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같은 팔에서 1분 정도 간격을 두고 두 번 측정해 결과를 모두 기록하는 방법이 안내된다. 첫 번째 수치가 높고 두 번째 수치가 낮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 하나만 골라 적지 않는다. 두 결과를 함께 남겨야 측정값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의료진에게 보여 줄 수 있다. 커프의 크기도 확인해야 한다. 팔둘레에 비해 커프가 지나치게 작거나 크면 실제와 다른 값이 나올 수 있다. 가정용 혈압계를 선택할 때는 손목형보다 정확성이 검증된 위팔형 자동 혈압계를 우선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제품의 종류보다 설명서에 따라 올바른 자세와 위치로 사용하는 일이 먼저다. 기계가 오래됐거나 측정값이 유난히 들쭉날쭉하다면 다음 진료 때 가정용 혈압계를 가져가 병원 측정값과 비교해 보는 방법도 있다. 커프를 두르는 위치와 팔을 놓는 자세를 의료진에게 직접 보여 주면 사용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집에서 잰 혈압은 숫자만 적으면 충분할까
집에서 혈압을 기록할 때 날짜와 수치만 길게 나열하면 측정 당시의 상태를 떠올리기 어렵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식사 전후인지, 혈압약을 복용하기 전인지, 산책을 마친 직후인지에 따라 혈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복잡한 기록표를 만들기보다 숫자 옆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 ‘오전 8시, 식사 전, 5분 휴식’ ‘저녁 7시, 산책 후 30분, 어지럼 없음’ ‘오전 9시, 잠을 설침, 두 번 측정’

두통이나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처럼 평소와 다른 증상이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적었다. 매일 측정 시간과 자세가 달랐다면 숫자만 나란히 놓고 정확하게 비교하기 어렵다. 반대로 비슷한 시간과 조건에서 여러 날 측정한 기록은 부모님의 평소 혈압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약을 먹기 전인지 후인지도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일정하게 기록할 수 있다. 측정한 팔도 가능하면 같게 유지하는 편이 좋다. 병원 수치와 집에서 잰 수치가 계속 다르다면 이러한 기록을 진료실에 가져가 보여 줄 수 있다. 다만 가정혈압 기록을 보고 가족이 직접 고혈압을 진단하거나 약의 양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수치가 낮게 나왔다는 이유로 약을 건너뛰거나, 높게 나왔다고 처방량보다 더 복용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기록은 치료를 대신하는 답이 아니라 의료진이 평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자료다.
긴장 때문이라고 넘기면 안 되는 수치와 증상
병원에서 혈압이 한 번 높게 나왔다고 모두 응급상황인 것은 아니다. 충분히 쉬지 않았거나 긴장한 상태였다면 자세를 바로잡고 안정한 뒤 다시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집에서도 높은 수치가 여러 날 반복되거나 평소보다 계속 높게 측정된다면 진료를 통해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수축기 혈압이 180mmHg보다 높거나 이완기 혈압이 120mmHg보다 높은 수치가 나오면 적어도 1분 뒤 다시 측정한다. 두 번째 측정에서도 매우 높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의료진에게 신속히 연락해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이처럼 혈압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가슴 통증, 호흡곤란, 갑작스러운 마비나 힘 빠짐, 시야 변화, 말하기 어려움 같은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면 기다리지 말고 119에 연락해야 하는 응급상황일 수 있다. 반대로 혈압이 평소보다 지나치게 낮으면서 어지럽고 기운이 없거나, 자리에서 일어설 때 휘청거리는 일이 반복되는 경우에도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 고령자는 혈압약 외에도 수분 부족, 식사량 감소, 발열이나 다른 약의 영향을 함께 받을 수 있으므로 숫자와 증상을 같이 알려야 한다. 병원 혈압계 앞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화면에 나타난 숫자가 아니다. 병원까지 걸어온 뒤 충분히 쉬었는지, 등을 기대고 두 발을 바닥에 두었는지, 맨팔에 커프를 착용했는지, 측정 중에 말을 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수치가 예상보다 높다면 자세를 바로잡고 잠시 안정한 뒤 다시 측정한다. 집에서는 같은 시간과 조건을 정해 두 번씩 재고, 날짜와 함께 휴식 여부와 증상을 짧게 기록한다. 병원과 집의 결과가 계속 다르거나 높은 수치가 반복된다면 기록을 가지고 의료진과 상의한다. 혈압을 정확하게 재는 방법은 복잡한 준비물을 갖추는 일이 아니다. 의자에 앉아 5분을 쉬고, 몸의 자세를 바로잡고, 한 번의 숫자보다 여러 날의 흐름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된다.
※ 혈압은 측정 환경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측정 결과와 증상을 함께 기록해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