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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계 숫자가 달라질 때 먼저 본 것은 따로 있었다

by 브라보인생 2026. 8. 2.

점심을 드신 엄마는 선풍기 바람이 직접 닿지 않도록 의자를 옆으로 조금 옮기셨다. 에어컨은 켜져 있었지만 거실 공기가 차갑지는 않았다. 엄마는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다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오늘도 머리가 조금 아프네.” 나는 엄마의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뜨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열은 없는 것 같으니 조금 쉬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서랍에서 귀에 대는 자동 체온계를 꺼내셨다. 처음에는 체온계 끝을 귀 입구에 살짝 대고 버튼을 눌렀다. 숫자를 확인한 뒤에는 체온계를 조금 더 안쪽으로 향하게 해 다시 재셨다. 두 번째에 표시된 체온이 훨씬 높게 나오자 엄마의 표정도 달라졌다. 같은 시간에 같은 귀에서 잰 체온인데 숫자는 일정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재면 내려갈 것 같다가도, 반대로 더 높게 나올까 봐 신경이 쓰였다. 나는 해열제라도 드시겠느냐고 여쭤봤다.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라며 손을 내저으셨다. 그러고는 식사를 마칠 때마다 잠시 누워 쉬었다가 체온계를 다시 찾으셨다.

 

거실에서 귀 체온계로 체온을 재는 고령의 어머니와 옆에서 결과를 함께 확인하는 40대 딸

 

같은 귀에서 잰 숫자가 달라지자 체온계를 댄 위치부터 다시 확인했다. 

귀 체온계는 깊이 넣을수록 정확할까

귀 체온계는 귓속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감지해 체온을 추정한다. 체온계 끝을 귀 바깥에 살짝 대었을 때와 고막 방향을 향하도록 넣었을 때에는 측정되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귀 입구가 제대로 밀착되지 않거나 체온계의 방향이 어긋나도 숫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높은 값을 얻기 위해 체온계를 귓속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리하게 누르면 귀 안쪽을 다칠 수 있으므로 제품 설명서에 안내된 위치까지만 부드럽게 대야 한다. 성인은 귓바퀴를 위쪽과 뒤쪽으로 살짝 당기면 체온계의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른쪽과 왼쪽 귀를 번갈아 재기보다 같은 쪽 귀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측정하는 편이 변화 여부를 비교하기 쉽다. 방금 한쪽 귀를 베개에 대고 누워 있었거나 차가운 바깥바람을 맞고 들어온 직후라면 잠시 기다렸다가 재는 것이 낫다. 귀 상태가 좋지 않거나 측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반복해서 재기보다 다른 측정 방법이 필요한지나 진료가 필요한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여러 번 측정할 때마다 숫자가 크게 달라진다면 가장 높은 숫자 하나를 고르기보다 사용 방법과 측정 조건이 같았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가장 높은 값을 고르는 대신 설명서에 나온 위치와 간격을 맞춰 다시 측정했다. 같은 조건으로 재지 않으면 체온이 달라진 것인지, 체온계를 댄 위치가 달라진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38도가 되기 전에도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

성인의 체온이 38도 이상이면 발열로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병원에 갈지를 체온 하나만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측정 부위와 시간, 활동량에 따라 체온이 달라질 수 있고, 사람마다 평소 체온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는 감염이 생겨도 열이 크게 오르지 않거나 전형적인 증상이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폐렴이나 다른 감염이 있어도 고열보다 기운이 떨어지거나 식사를 못 하는 모습, 갑자기 처지는 변화가 먼저 나타날 수 있어 체온과 몸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엄마가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을 때에는 체온계 화면만 들여다보지 않았다. 평소처럼 대화가 되는지, 숨이 차거나 기침 같은 새로운 증상은 없는지, 물을 마시고 식사를 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폈다.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반복되거나 오한, 기침, 배뇨 통증, 심한 몸살처럼 새로운 증상이 나타난다면 고령자는 의료기관에 연락해 진료 시기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38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평소보다 기운이 뚜렷하게 떨어지고 식사나 수분 섭취가 어려워진다면 체온이 더 오르기만 기다리지 않는 것이 좋다. 숨쉬기 어렵거나 가슴 통증이 생기는 경우, 깨워도 반응이 둔하거나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는 경우에는 체온과 관계없이 신속하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평소와 다른 심한 두통이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도 냉방이나 피로 탓으로만 넘기지 말아야 한다.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 반복될 때에는 체온뿐 아니라 통증이 시작된 시점과 강도, 함께 나타나는 증상을 살펴 진료가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그날부터 우리 가족은 체온계 숫자보다 먼저 엄마의 달라진 상태를 살피게 됐다. 

 

식탁에서 물컵을 건네며 연세 드신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는 중년의 딸과 식탁 위에 놓인 귀 체온계

해열제는 체온계 숫자만 보고 드리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평소보다 높은 체온이 나오자 해열제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해열제는 체온계 숫자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무조건 복용하는 약은 아니었다. 열이나 통증으로 몸이 많이 힘들 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현재 복용 중인 약과 건강 상태에 따라 주의해야 할 점이 달라진다. 여러 진료과에서 약을 처방받는 고령자는 집에 남아 있는 해열제를 먼저 꺼내기보다 약의 이름과 용량을 확인해야 한다. 종합감기약에도 같은 해열 성분이 들어 있을 수 있어 함께 복용하면 성분이 겹칠 수 있다. 신장 기능이나 간 기능이 좋지 않거나 위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진통제와 해열제를 선택할 때 더 주의해야 할 수 있다. 평소 복용 중인 약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 확실하지 않다면 약사나 의료진에게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체온이 높게 나왔다는 이유로 평소 약을 임의로 중단해서도 안 된다. 엄마가 약을 원하지 않았던 그날에는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 대신 한꺼번에 많은 물을 마시게 하기보다 조금씩 자주 드실 수 있도록 물컵을 가까이 두었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소변량이 줄지는 않았는지도 확인했다. 선풍기 바람은 몸에 직접 닿지 않게 했고, 에어컨 온도를 지나치게 낮추지 않았다. 두꺼운 이불을 덮어 억지로 땀을 내게 하거나 찬물로 몸을 식히는 일도 하지 않았다. 두통이 냉방 때문이라고 단정하지도 않았다. 수분이 부족하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 식사량이 줄었을 때에도 머리가 아플 수 있다. 반대로 새로운 두통이 계속되거나 점점 심해진다면 체온이 정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괜찮다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체온계를 내려놓은 저녁

엄마는 식사를 마치면 체온계를 한 번 재고, 소파에 누워 쉬다가 다시 재곤 하셨다. 첫 번째보다 높은 숫자가 나오면 한 번 더 확인했고, 낮게 나오면 어느 쪽이 맞는지 궁금해 다시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나도 체온이 내려갔는지 궁금해 엄마 옆에서 화면을 함께 바라봤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잴수록 몸 상태보다 체온계 끝을 어디에 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되기 쉬웠다. 엄마가 체온계를 찾을 때마다 나는 숫자보다 먼저 상태를 물었다. “아까보다 머리가 더 아파요?” 엄마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으셨다. “숨 쉬는 것은 괜찮아요?” 엄마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다. 물도 조금씩 드셨고 저녁 식사도 남기지 않으셨다. 걸어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모습과 대화하는 목소리에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필요할 때에는 같은 귀에서 같은 방법으로 체온을 확인했다. 체온을 확인한 뒤에는 엄마의 걸음과 식사량, 목소리부터 다시 살폈다. 그날 저녁에도 엄마는 식사를 마친 뒤 서랍을 열었다. 체온계가 놓인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내게 물으셨다. “아까보다 멀쩡하면 지금은 안 재도 되나?” 나는 엄마 앞으로 물컵을 조금 밀어 드렸다. 엄마는 물을 두 모금 마신 뒤 서랍을 닫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시작됐고, 체온계 화면을 기다리는 대신 우리는 날씨 예보를 끝까지 함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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