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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봉지를 다시 냉장고에 넣으신 이유

by 브라보인생 2026. 7. 22.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가 냉장고 문을 열고 한동안 안을 들여다보셨다. 안쪽에는 전날 사다 놓은 곰탕 봉지가 들어 있었다. 엄마는 봉지를 꺼내 포장지를 앞뒤로 살펴보더니 다시 냉장고 안에 넣으셨다. “이것도 이제 먹으면 안 되는 거니?” 내과에 다녀온 뒤 엄마에게 음식은 먹고 싶은 것보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의사는 신장 기능이 좋지 않으니 홍삼이나 한약, 건강기능식품을 함부로 드시지 말고 진하게 끓인 곰탕도 자주 먹지 않는 편이 좋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지면 나중에 투석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으셨다. 엄마는 곰탕보다 ‘투석’이라는 단어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셨다. 몸이 붓거나 숨이 찬 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자신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한 것 아니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나는 냉장고 안의 곰탕을 다시 꺼냈다. 오늘 먹을지 말지를 바로 결정하기보다 평소보다 적게 담아 보기로 했다. 아직 오지 않은 치료를 이미 정해진 일처럼 걱정하기보다, 우리 집에서 자주 먹는 음식부터 하나씩 살펴보는 편이 나았다.

신장 기능이 좋지 않으면 곰탕을 먹지 말아야 할까

봉지를 뜯어 냄비에 곰탕을 붓자 익숙한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엄마는 평소라면 대파를 썰어 넣고 소금 간부터 보셨을 텐데, 그날은 냄비 앞에 서서 국물만 바라보셨다. “고기만 건져 먹으면 괜찮은 거니? 국물은 한 숟가락도 먹으면 안 되고?” 엄마는 국이나 찌개가 나오면 건더기뿐 아니라 국물도 거의 남기지 않으셨다. 곰탕은 기운이 없을 때 먹는 든든한 음식이라고 생각했고, 국물까지 비워야 한 그릇을 제대로 먹었다고 느끼셨다. 진하게 끓인 곰탕은 간이 더해지면 나트륨 섭취가 많아질 수 있고, 고기까지 넉넉히 먹으면 단백질 섭취량도 늘어난다. 신장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몸속에 남은 나트륨과 수분을 충분히 배출하기 어려울 수 있고, 상태에 따라 단백질 섭취량도 조절해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곰탕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검사 결과와 평소 식사량, 함께 앓고 있는 질환에 따라 조절해야 할 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엄마의 곰탕만 따로 치우지 않았다. 평소보다 작은 국그릇을 꺼내 건더기가 잠길 정도로 국물을 담았다. 엄마는 고기를 먼저 건져 드시다가 국물을 두어 숟가락 떠보셨다. 식사가 끝났을 때 그릇 바닥에는 평소라면 남지 않았을 국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주방에서 냉장고 속 곰탕 봉지를 꺼내 들고 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는 고령의 어머니와 곁에 선 중년의 딸

냉장고를 열면 먼저 확인하는 음식이 생겼다

곰탕을 먹은 다음 날부터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질문이 하나씩 늘었다. 엄마는 김치통을 꺼내며 김치는 몇 쪽까지 괜찮은지 물었고, 멸치 육수와 두부, 우유도 먹어도 되는지 확인하셨다. 병원에서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음식을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니 식탁 전체가 문제처럼 보였다. 김치를 좋아하던 엄마는 한 조각을 집으면서도 너무 짠 것은 아닌지 걱정했고, 두부를 보면서는 단백질이라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셨다. 신장 기능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똑같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나트륨을 우선 줄여야 하는 사람도 있고, 검사 결과에 따라 칼륨이나 인, 단백질 섭취를 따로 조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상태를 모른 채 인터넷 식단을 그대로 따르면 필요 이상으로 먹는 양을 줄이거나 영양 섭취가 부족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음식마다 된다거나 안 된다고 바로 답하지 않았다. 김치는 하루에 얼마나 먹는지, 국은 몇 끼에 올라오는지, 두부와 고기는 한 번에 어느 정도 드시는지를 살펴봤다. 특정 음식 한 가지보다 짠 국물과 반찬이 같은 날 얼마나 자주 겹치는지를 보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다음 진료 때 물어볼 음식도 엄마가 실제로 자주 드시는 것만 추렸다. 곰탕, 김치, 멸치 육수, 두부를 적었다. 낯선 신장 식단표를 통째로 따라 하기보다 냉장고에서는 자주 꺼내는 음식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진료실에서는 단순히 “곰탕을 먹어도 되나요?”라고 묻기보다 일주일에 몇 번 먹는지와 한 번에 어느 정도 먹는지를 함께 말씀드리기로 했다. 김치와 국도 하루에 먹는 횟수를 알려 드리면 완전히 피해야 하는지, 양을 줄여 먹을 수 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김치를 큰 반찬통째 올리지 않고 작은 접시에 서너 쪽만 덜었다. 국도 그릇 가득 담지 않고 건더기가 보일 정도로만 조금 담았다. 그러자 엄마는 내가 국그릇을 바라볼 때마다 불편해하셨다. “평생 이렇게 먹었는데, 이제 밥 먹는 것도 감시받아야 하니?” 그 말을 듣고 나니 엄마 혼자만 다른 그릇을 받고, 숟가락을 들 때마다 가족의 시선을 받는 방식은 오래가기 어려워 보였다. 다음 식사부터는 나와 아버지의 국그릇도 같은 크기로 바꿨다. 김치도 각자 먹을 만큼만 작은 접시에 덜었다. 어느 날 엄마는 김치 한 조각을 집었다가 반으로 잘라 드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두 번에 나누어 드시더니 “이렇게 먹으니 오래 먹는 것 같네”라고 하셨다. 김치를 모두 끊지 않아도 양을 조절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엄마가 직접 찾아낸 순간이었다.

투석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바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김치와 곰탕보다 투석이라는 말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계셨다. “나중에 정말 기계에 의지해야 하는 거니?” 진료에서 들은 내용은 지금 당장 투석을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신장 기능이 더 떨어지는지 정기적으로 살펴보고 혈압과 식사 같은 생활 요소를 함께 관리하자는 설명에 가까웠다. 신장은 혈액 속 노폐물과 남는 수분을 걸러 소변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매우 떨어져 몸속 노폐물과 수분을 충분히 배출하지 못하면 혈액투석이나 복막투석 같은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다만 투석 시기는 검사 수치 하나만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부종이나 호흡곤란, 소변량의 변화, 전해질 상태와 전반적인 몸 상태 등을 의료진이 함께 살펴 판단한다. 신장 기능을 보여 주는 수치가 낮더라도 증상과 체액 상태 등을 함께 보기 때문에 가족이 검사 결과 하나만으로 투석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식사 조절과 별개로 몸이 갑자기 붓거나 숨이 차고 소변량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변화가 생기면 다음 예약일만 기다리지 말고 의료진에게 확인해야 한다. 엄마는 설명을 듣고도 완전히 안심하지는 않으셨다. 대신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그러면 다음 검사 때까지 나는 뭘 하면 되니?” 식탁에서 먼저 바꾼 것은 먼 치료를 미리 걱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몸에 좋다는 말만 듣고 홍삼이나 보약을 새로 사 드리지 않고, 국과 찌개가 하루에 몇 번 올라오는지 살피고, 짠 반찬을 한꺼번에 많이 꺼내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전에는 엄마가 기운이 없다고 하면 건강기능식품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신장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일부 성분이 부담이 될 수 있고 제품마다 원료와 함량도 다르다. 모든 제품이 해롭다는 뜻은 아니지만, 엄마에게 맞는지 확인되지 않은 것을 광고 문구만 믿고 먼저 드시게 하지는 않기로 했다. 냉장고 문에는 금지 음식 목록 대신 작은 메모 한 장만 붙였다. 엄마가 자주 드시는 음식과 다음 진료에서 물어볼 내용을 적었다. 엄마는 그 메모를 볼 때마다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아니라 아직 확인해야 할 음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세 사람의 국그릇이 다시 같아졌다

엄마만 작은 국그릇을 사용하던 며칠 동안 식탁의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엄마가 국물을 한 숟가락 뜰 때마다 가족이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셨고, 나는 신경 쓰지 않으려 하면서도 그릇에 남은 양을 확인하고 있었다. 음식의 양을 줄이는 것보다 먼저 바꿔야 했던 것은 엄마 혼자 관리받는 것처럼 느끼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세 사람이 같은 크기의 국그릇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을 담는 양은 서로 달라도 그릇의 크기는 같았다. 김치도 큰 통을 가운데 놓는 대신 각자 먹을 만큼 작은 접시에 덜었다. 그 뒤로 국물을 얼마나 남겼는지 서로 묻지 않았다. 어떤 날은 엄마가 평소보다 조금 더 드셨고, 어떤 날은 국물에 거의 손을 대지 않으셨다. 한 끼의 양만 보고 잘했거나 잘못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 끊은 것도 아니고, 집에서 조절한 식사만으로 신장 수치가 좋아진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식사량을 지나치게 줄이면 오히려 영양 섭취가 부족해질 수 있으므로 엄마의 검사 결과와 건강 상태에 맞는 기준은 담당 의료진과 확인해야 했다.

 

저녁 식탁 위 세 개의 국그릇에 조금씩 다른 양의 국물이 남아 있고 이를 바라보는 고령의 부모님과 중년의 딸

 

다음 검사를 앞둔 지금도 엄마는 따뜻한 국을 좋아하고 김치가 없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곰탕을 먹는 날이면 국물을 어디까지 먹어야 하는지 아직도 한 번쯤 물으신다. 며칠 전 엄마는 냄비에서 국을 뜨다가 국자를 잠시 멈추셨다. 자신의 그릇에는 건더기를 먼저 담고 국물은 조금만 부으셨다. 식사를 마친 뒤 남은 국물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이 정도는 남겨도 아깝지 않네.” 그날 싱크대로 옮긴 세 개의 국그릇에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양의 국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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